세기말의 어둠이 너무 무거워
잠잘 수 없는 자는 꼭두새벽에 한 번 일어나
한강변을 거닐어 보라
강은 80년 세월을
한결같이 흘러왔지만
안개 자욱한 흑석동과
찬 서리 내린 안성 땅 내리도
아직은 미명, 짙은 어둠 속
먼저 깨어난 새 한 마리가
동료 새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지금은
인간의 가족들이 굶주리다 흩어지는
겨울이다
1999년 새해도
퀭한 눈으로 어둠의 끝을 응시해야 할
세기말이지만......먼저 눈뜬 새여
저 하늘에다 아침을 부려 놓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렴
봄이 오면 우리는 한강변에 씨 뿌릴 터이니
너희들 봄 오면
움트는 가지에 앉아
그리운 짝이 있음 마냥 그리워하고
노래하고 싶을 땐 맘껏 노래하고
울고 싶을 떈 목놓아 울어
남산을 남산이게 하고
명수대 숲을 숲이게 하렴
너 작은 한 마리 새여
겨울은 언젠가 간다고
뭇 생명들을 향해
몸으로 알려라
몸으로, 그 작은 목숨으로
양 날개 힘껏 퍼득이고
무리를 지어 날아다녀라
조금씩 조금씩 밝아오는
저 하늘에다 대고
이렇게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목청껏 노래불러라
세상이 아직은 어둡지만
날 밝으면 하늘이 파랗다고
우리 이 땅에 이렇게 푸릇푸릇 살아 있기에
하늘이 우리를 위해
저렇게 파랗지 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