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informatization)란 정보의 유통량이 팽창함에 따라 이를 효율적으로 수집, 분석, 가공하여 서비스해주는 기술이 고도화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보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물질이나 에너지가 창출해주는 가치보다 커지게 되는 사회를 또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 결과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이 사회에 등장할 것으로 가정한다면 그것을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라고 호칭하고 있는 실상이다. 정보사회의 지배적 테크놀로지는 정보처리에 관한 것이 될 것이며, 생산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정보 및 지식이 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와 지식의 축적은 정보자료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며, 그러한 자료는 인류 문화의 대표기관이 도서관에서 재생산을 기다리게 된다. 이용되고 인용되며, 수없이 많은 불특정 다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이용됨으로서 확대 재생산과정을 거치게 된다.

지식의 활동적 순환은 도서관이라는 기관을 통해서만 효율적으로 수행된다. 많은 학자들은 동경하고 염원하기를 도서관을 "대형서점과는 다른 미궁의 느낌, 몇 권의 책을 뽑아 도서관 구석진 자리에 앉으면 나만의 소우주가 되는 환경, 책과 책사이의 이랑을 즐길 수 있는 완전한 개가제 시스템의 환경과 문자를 희롱하는 햇살을 위해 아름다운 창문이 있는 환경을 동경하고 있다. 또한 빽빽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서가와 서가사이를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부딪히는 오래된 책에서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경외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차라리 책더미 속에 묻혀 죽는 것이 행복하다"라고 한 키케로 같은 인물 없음은 '영혼을 치유하는 집'인 진정한 도서관의 부재 때문인가 아니면 찾을 수 있는 혜안이 없는 것인가, 술 마시게 하고 그리고 취하게 하는 주제이다.

대학도서관의 목적은 대학의 목적과 같다. 이 목적은 훌륭한 도서관이 없이는 결코 성취될 수 없다. 도서관을 대학의 심장부라고는 하지만 진심으로 그 심장부를 위해 수혈을 해주는 정책이나 사람이 없다. 신르네상스 운동은 도서관의 부흥이나 재건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학문의 전당에 연구할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니 중앙은 여전히 중앙에서 그것도 아래에서 중간이다. 중앙은 핵심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어중간한 중간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실재하는 것은 중복됨으로 많고 부재하는 것은 더 많은 환멸의 도서관'이 존재하는 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미의회 도서관은 1억의 소장자료와 이를 보관하는 서가 길이만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할 수 있는 거리인 9백40km, 연간 예산은 3억1천만불(3천3백억원) 그리고 전문직 사서가 5천명이나 되는 거대한 지적 유희장이며, 문화 향유의 이상향이다. 하버드 대학은 중앙도서관 외에 분관수만 1백 3개나 이른다고 하니 학문의 발전과 과학의 진전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연구환경의 구축 없이는 문화적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중앙은 여전히 중간어귀에서 남의 눈치만 살피는 3류대학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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