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졸업을 앞둔 선배와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기자의 눈엔 한 선배의 모습이 담배 한 모금으로 걱정을 달래기엔 역부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그의 행동을 눈치라도 챘다는 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 요즘 잘 지내세요? 평소 같으면 함박웃음으로 "그래 임마 넌 어떻게 지내냐?"라고 후배의 고민을 들어줄 선배였으리라. 하지만 졸업을 앞둔 그 선배의 얼굴엔 자신의 고민만으로도 벅차 있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담배 연기가 실내를 가득 메웠고 선배의 쓴웃음만 지금은 기억할 뿐이다.

대학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세계로 발버둥치는 그 낯선 공간이 두려움과 주저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떠나 버리면 다시는 올 수 없는 지난날인 까닭이나 단순한 세월의 아쉬움만은 아니다. 손때묻은 캠퍼스 하늘을 뒤로하며 또 다른 설레임과 두려움을 맞으려 총총히 걸음을 옮기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도 자신이 없다. IMF한파로 인한 구직난과 불안하기만 한 현 경제상황이 대학을 그렇게 변화시키고 있는 듯 싶다.

지난 15일 오랫동안 논란이 돼오던 정리해고 관련법안이 드디어 국회를 통과해 우리 노동시장은 대량실업시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고용조정(정리해고), 근로자 파견제 반대 등 노동자의 생존보장을 위한 함성이 전국 곳곳을 메우고 있다. 더욱이 이번 고용조정관련법안은 IMF가 요구한 내용들이 그대로 반영되었고 재계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더욱더 큰 변화를 초래하게 될 전망이다. 이미 많은 노동자가 불법해고 되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제2의 젊은 노동자는 한숨만 내쉴 뿐이다. 더욱이 여대생의 취업자리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성별 분업적 노동시장구조와 그에 따른 고용차별, 설상가상격으로 덮친 IMF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연기만 내뿜게 하는 현실로 내몰고 있다. 4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 했던 고귀한 만남과 사랑, 지식을 꼼꼼히 간직하기도 전에 이러한 현실적 상황 앞에 삭막해지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그렇지만 IMF를 호재로 삼 아 위기관리의 전문가로서의 거듭난다면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의 새로운 용역의 등장과 외주화 추세에 맞춰 생존전략을 꾸밀 수도 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말하는 인간관계, 친밀함, 동료의식, 형제애적 연대, 봉사정신 등 기술사회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을 찾아나서는 것도 지혜로운 사회진출 방식일 수 있다.

위기시대의 노동형태의 변화와 이에 따른 생존전략을 구체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초년생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할 때이다.

<정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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