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부터 5일간 나는 다른 외국인 교수와 함께 중앙대학교 제6차 문화유적답사회(회장:임혁재, 문과대 철학과 교수) 활동에 참가하자는 권유를 받고 쾌히 승낙했다. 우리들이 버스에 승차한 후 얼마되지 않아 버스내는 왁자지껄한 이야기와 차창 밖의 가을풍경이 어우려져 축제분위기와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도록 우리는 계속 차를 타고 갔고 아름다운 산과 들을 많이 지났다. 타오르는 붉은 단풍나무잎이 급변한 날씨로 인하여 빛바랜 색깔로 변색되어 곡선을 그리며 간혹 흔적을 남겼다. 날씨는 봄처럼 따뜻했고 하늘은 높고 원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의 경이로운 산과 들을 지나 우리는 첫 유적지(굴산사지)에 도착하였다.

최초의 건축물은 이 유적지에서 유실된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박경하 교수(문과대 사학과)가 적절하게 그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지만 나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이 나라 형세는 어떠했을지, 사람을 마음속에는 갈등은 없었는지 그네들은 여유있는 삶을 즐겼었는지 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현재 존재하고 있지 않은 건축물은 이 지방 사람들에게 위로의 마음과 상상력을 준다. 지금은 깨어진 화강암만이 그 자리임을 알려 줄 뿐이지만 이 돌은 오래되서 풍부한 인간사도 담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 지역 사람들은 이 돌에 대해 중대성을 잊고 있으며 생각이나 해보는가 이다. 이 돌들이 단지 관광객들이 간간이 찾게 되는 대상만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낙산사를 가는 도중에 아름다운 바다와 전원풍경을 보았다. 화려한 절의 다양한 유물들에 우리는 발을 멈추었다. 박교수는 부처의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서로 다른 두 손의 위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한국이 예전에는 8천개 이상의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6·25와 외부적인 강요된 전화에 의하여 많은 사찰들이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유적지를 이렇게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행운이고 큰 기쁨일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낙산사에서 경이롭고 감동적인 경험을 했다.

또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橡)의 권위와 위엄을 잊을 수 없다. 보타전 한 가운데 모셔진 관음상은 자리를 뜨고 싶지 않게 할 정도로 나를 매료시켰다.

그 옛날 이 절을 창건키 위해 건축에 몰두했던 선인들의 심오한 예술성, 잎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느끼면서 우리는 산속 깊이 감추어진 건봉사로 향했다. 박교수는 출입구에 있는 남자, 여자 조각상, 다양한 사찰의 그림들과 나무 조각물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벽화 '단청'을 그리기 위하여 천연 식물염료를 사용했다는 그것의 복합패턴구도는 경외(敬畏)였다. 전화에 의해 부분 소실되었던 이 낯선 사원건축이 새로운 것과 낡은 것으로 공존한다는 것도 나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옛날의 파괴와 현재의 고요함이 매우 밀접하게 엉겨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이것이 이 아름다운 한국에서의 첫 번째 역사기행이었다. 끝으로 내가 중앙대학교에 부임한 후 대학문화 환경에 맞는 문화유적답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신선한 기쁨으로 느끼면서 후원해 주시고 초대해 주신 제2캠퍼스 부총장님과 한명남 학장에게 감사드린다.

Jim Gongwer <외국어대 영어학과 교수>

<번역:김영안, 제2캠퍼스 열람과 장서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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