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새로운 변화의 과도기에 있고 가치관이나 그에 따른 인간의 행위 또한 변화의 조류를 함께 하면서 변화하고 있는데 작은 것일 수도 있으나 그 작은 일조차 지킬 수 없는 우리인가들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 만의 생각일까.

얼마전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앉아 있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빗자루로 그 커다란 강의실을 바쁘게 청소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청소하시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놀라움과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어느새 쓰레기통 한 개는 채우고도 남을 각종 쓰레기들을 끌어 내려서 내가 앉아 있던 강의실의 거의 앞부분에 와서 하시는 아주머님은 "이 큰 강의실은 청소하기가 힘드는데, 이 쓰레기좀봐 없는 게 없어. 배웠다는 사람이 왜들 그려" 혼잣말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혼자말이었으나 분명 주위의 듣는 이들을 부끄럽게 했을 것이다.

정말 그 쓰레기 안에는 신문, 종이컵, 휴지조각, 음료수캔, 담배꽁초 등 없는게 없었고 거기서 버려진 인간의 양심들을 보았다. 불신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아주머니의 짧은 읇조림 속에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 배움이라는 것은 누구를 위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수고하시는 우리네 어머님 같은 연배의 아주머니들의 노고를 말할 것도 없고 우리네 인간들의 극히 빈약한 의식의 단편을 보는 것같아서 착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 하나도 제대로 버리지 못한다면 '그 무엇을 올바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면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며 나의 독단적인 생각인가.

작은 것들이 올바로 지켜질 수 있을 때, 그러한 가치들이 올바로 평가받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마지막의 지켜내야 할 우리 사회적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자신의 쓰레기만은 자신이 처리하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양심들로 인해 학생들을 불신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로잡아야 할 이 당연한 문제를 모든 이들이 명확하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창현, 정경대 정외과 3>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