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함으로는 진화를 입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완전한 것은 굳이 역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가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단계가 아닌 우연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힘의 작용이라고 주장합니다. 손목뼈가 발달하면서 생겨난, 일종의 임시방편이라고 볼 수 있는 자이언트 판다의 여섯 번째 엄지처럼 말이죠. 

  이처럼 자연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적응에 능통한 존재입니다. 굴드가 ‘자연은 훌륭한 땜장이’이지 신묘한 장인은 아니라고 말한 이유죠. 

  대신 굴드는 자연의 불완전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의미를 갖지 않는 과거의 흔적들. 즉 무용하고 기묘하며, 특이하고 불균형한 것들이 역사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진화를 ‘종에서 종으로의 이동’이라 표현하는 것처럼, 굴드의 ‘단속평형설’은 성장이 아닌 알을 깨고 나오는 탄생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에서 흔적을 남기는 모든 존재의 진화 과정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훗날 우리의 흔적을 발견할 누군가를 떠올리며 오늘도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겨봅시다. 지금의 유용함이 미래의 무용함이 될지라도 우리가 지금, 여기 존재했다는 흔적은 자연 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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