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세상 속 ‘뷰’를 포착하는데요. 이번엔 오래된 공간을 새로운 의미로 재해석한 공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공간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의미있고 중요한 곳 역시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에 옛 공간과 함께하는 방법으로 ‘적응형 재사용’이란 개념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가치있는 공간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죠. 사진부는 오래된 건축물에 새로운 의미를 담은 공간을 뷰파인더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최예나 기자 yesme@cauon.net

사진 문준빈 기자

추억이 가득한 정겨운 대중목욕탕. 어렸을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따라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둘 사라져 찾기 힘들다. 이는 목욕탕뿐만이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사라지는 공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것에서 더 나아가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지녀 보존해야 하는 곳까지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적응형 재사용’이다. 옛 건물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용도로 장소를 탈바꿈하는 것이다.

  경제성의 늪에 빠지다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목욕장업으로 등록된 업소 1만 7475곳 중 영업 중인 곳은 5844곳이다. 10곳 중 3곳꼴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목욕장업 등록업소 중 총 1364곳이 폐업했다. 비단 목욕장뿐 아니라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도 개발을 이유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대해 김도형 디엔비건축사사무소 과장은 “한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거치며 경제적 가치를 문화적·역사적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며 “부동산 개발이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더 크고 효율적인 건물을 짓고자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대한 철거 비용으로 막상 건물을 허물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윤승현 교수(건축학부)는 “경제적 이유로 철거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며 “더 이상 수익을 바라며 운영하지도 건물을 철거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라고 언급했다.

  적응형 재사용이라는 동아줄

  이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적응형 재사용이다. 적응형 재사용은 건축물이 본래 기능에 적합하지 않거나 이를 위해 이용되지 않을 때 새로운 존재와 기능을 부여하는 과정을 뜻한다. 서대문구에 위치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그 예다. 일본제국주의가 지은 근대식 감옥인 서대문형무소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현장을 보존해 1998년 11월 5일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낙후된 시설을 적응형 재사용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상도동에 위치한 ‘부강탕’도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이곳은 1973년 지어진 목욕탕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 현재 제과점, 레스토랑 등으로 영업 중이다. 부강탕을 운영 중인 배재현씨(46)는 “방치된 공간을 재탄생시켜 방문객이 감동을 느끼고 영감을 얻어가길 바랐다”며 적응형 재사용의 동기를 밝혔다.

  적응형 재사용은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 재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성수동의 쇠퇴한 공장 지역을 활용한 ‘성수동 대림창고 갤러리’와 같은 카페들이 대표적이다. 제조업의 몰락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성수동은 적응형 재사용을 통해 ‘핫 플레이스’로 부흥했다.

  ‘적응’을 통해 얻는 가치들

  적응형 재사용은 기존 건축물의 역사적 특징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건축물은 곧 시대상을 반영하는 지표이다. 서대문형무소와 같이 시대적 상징물로 대표되는 건물뿐만 아니라 평범한 건축물에도 오랜 기간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이 축적된다. 이는 곧 장소에 의미를 부여한다. 김도형 과장은 “작게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기억, 크게는 국가적·사회적 역사를 건축물에 보존할 수 있다”며 “건축물의 보존이 곧 지역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다”고 전했다.

  「근대건축물의 가치해석을 통한 적응적 재사용 방법연구-상도동 영단주택의 가치해석을 통한 적응적 재사용 계획안」(문재형·김영재, 2023)에 따르면 적응형 재사용의 개념은 문화적·사회적 측면의 지속 가능성을 반영한다. 이에 더해 역사적인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현대의 수요와 용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다. 윤승현 교수는 “시대적 요구가 변했다는 이유로 건축물에 녹아있는 생활과 삶의 방식, 역사적·사회적 정체성까지 다 지워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사라져가는 가치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을 갖고 공공의 단위에서 적응형 재사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적응형 재사용은 경제적 가치 역시 창출한다. 건물을 신축하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건물을 재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 자재와 같은 자원을 절약하고 건축 폐기물을 줄임으로써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더해 건물을 상업적·문화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까지 기대할 수도 있다.

  적응형 재사용은 쓰임을 다했다고 생각되는 건물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환경적 가치를 창출해 내기도 한다. 사회적 수요에 맞춰 사라지고 있던 건물을 재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사진 문준빈 기자
사진 문준빈 기자
부강탕 (서울 동작구 상도로34길 7) 1970년대 목욕탕 건물을 베이커리로 재탄생시켰다. 사진 임영진 기자
부강탕 (서울 동작구 상도로34길 7) 1970년대 목욕탕 건물을 베이커리로 재탄생시켰다. 사진 임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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