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3월 11일 자 신문을 받아보았다. 코로나의 여파가 잊히기 시작한 이제서야 봄의 초입을 조금은 편안하게 지켜볼 수 있게 된 듯하다. 많은 단절을 초래했던 감염병의 시기가 지난 후, 봄의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낯익은 모습들이 한층 뜻깊게 다가온다. 지면에 게재된 인문대의 새터가 4년 만에 부활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통해 이제는 교내 곳곳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신학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또 온라인 플랫폼에 관한 기사는 그간 간과했던 소비생활의 실태에 관해 경각심을 일깨워주었고 건강한 소비생활에 개인의 노력이 가장 요구된다는 지점에 공감했다. 

  우리의 현재를 새기고 비평하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관해 생각해 보면 신문을 출간하는 과정도 예술의 착안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19세기 리얼리즘 화가들은 기존의 낭만주의 화풍에서 추구했던 상상 속 이미지의 이상적인 미적기준에서 벗어나, 일상의 아름다움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특히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림을 의뢰하는 요청에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천사를 보여주면 그리겠다”고 응답한 일화는 이러한 리얼리즘 화가의 신념을 잘 드러낸다. 리얼리즘 사조의 작품들은 당시 노동자 계급의 모습을 실제적이며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훗날 그 시대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남겨진 시각적인 기록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현실과 소통하는 예술의 역할은 언론과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필자는 정성스럽게 구성된 중대신문을 읽어나가며 하루, 한 달 그렇게 수년간의 기록들이 모여 중앙대의 색채와 정체성을 빚어가는 근간이 되어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희망의 글로 신학기를 열어준 중대신문에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정나래 교수
음악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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