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진짜 뭘 해야 할까. 새해가, 새 학기가 무덤덤해지는 시기가 오면 당황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던 지루한 어른이라는 것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점점 꿈꿀 수 없을 것 같아서.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미래를 상상하자면 스케치북 하나를 전부 알록달록 채울 수 있었다. 이젠 없다. 그 모든 게 머릿속에서 맴돌다 꺼내려니 부서졌다. 

  고민이 많았다. 사랑하던 걸 포기해서, 날 살게 하던 것들이 더 이상 내 심장을 뛰게 하지 않아서, 많이 방황해 버린 탓에 복구하지 못하는 성적 때문에, 또 성적 따위에 쉽게 좌지우지되는 어린 나 때문에. 그렇게 미지근한 사람이 된다. 뭐라도 되겠지, 언젠간 하겠지. 그러나 무언가를 하고 싶지도 않고, 불꽃이 타오르지도 않는다. 혼자 있는 게 편하게 됐다. 그래서 올해 1월에 떠난 뉴욕 여행에서, 헤드셋을 끼고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채 혼자 걸었다.  

  뉴욕은 자유로웠다. 거리에서 춤추던 사람도, 갑자기 노래하던 재즈클럽의 할머니도, 어쩌면 약에 취해 흥분감을 주체하지 못하던 남자까지도…. 그래서 나도 무작정 걸었다. 노래에 취해서, 사람에 치여서, 걸었다.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채로 걷다 보니 자유로웠다. 행복했다. 너무 편한 상태였는데, 그게 그냥 나였다.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곳에 갔다. 여행 5개월 전부터 기대하며 6만 원에 표를 끊고 그곳에서 느낄 행복감을 상상했다. 드디어 일몰이 시작되고, 어두워짐과 동시에 도시 곳곳에 불이 켜졌다. 과연 너무 아름다웠다. 그 광경을 꼭대기에서 내려다봤다. 뉴욕시티가 내 발아래 있었고, 그 넓은 곳이 전부 내 시야에 담겼다. 모두가 살아 있었다. 

  그러나 그곳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속에 나만 멈춰있었다. 내가 여행하며 느낀 건 좌절감이었다. 지하철에서 행복하게 버스킹하는 할아버지를 봤을 때도, 월등히 타고난 흑인 댄서들을 봤을 때도…. 여러 가지 생각과 함께 뉴욕 꼭대기에 자유롭게 갇혀 있었다. 계속되는 이 나라의 공전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전했다. 이 나라가 쉴 새 없이 반짝일 때, 난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것들에만 주목하며 켜졌다, 커졌다 하고 있었다. 누군가 정해뒀을 내 자리만을 기다리면서, 운명처럼 내게 올 그것만을 기다리면서….  

  그때, 그날 아침 영민 언니가 보여준 글이 생각났다. “La vie, c’est pas un train, c’est un bar. (삶은 자리가 정해져 있는 기차가 아니야, 바야.)”  

  그 누구도, 그 어떤 곳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가 직접 두드리고, 말도 걸어보고, 의자도 빌려 앉는 것이다. 오늘 뉴욕에 있는 바, 내일은 서울에 있는 바일 수도 있다. 무언가 실현하기 위해 간 뉴욕에서 오히려 원동력을 얻었다. 다연아, 의심하지 말고 질문해. 고여 있지 말고 떠나. 계속 혼자여도 좋으니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면 된다.

강다연 학생
프랑스어문학전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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