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식물엔 든든한 뿌리가, 동물에겐 대지와 수평을 이루는 네발이 주어졌으나 불안한 직립의 인간에겐 언어능력이 대신 주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는 현대에 이르러 인간 존재의 규정이나 사유의 틀을 만드는 기능적 의미를 넘어 현대철학 그 자체로서 거듭났다. 

  하야카와로 대표되는 일반의미론은 인간의 언어·사고·행동 사이의 깊은 성찰 관계가 주로 정서적 기능과 함께 그 통달적 기능에 맞춰져 있다고 주장한다. 말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준다. 사람의 사고를 형성하고 감정을 통해 의지와 행동을 인지하는 힘이 있다. 행동과 성격은 자기 자신과 세상에 관해 논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의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배갯머리 송사에 약하다’는 것은 아내의 감정호소가 주효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별 1호는 어떻게 지구를 돌며 그 과정을 송신해 줄 것인가의 문제는 한 치도 어긋남 없는 과학적 표현을 의미한다. 경제진단이 빗나가는 경우 역시 그 언어로써의 통달적 기능의 오류 탓으로 볼 수 있다. 종합해보면 전기-전류, 풍요-풍부, 빈곤-빈한 등의 단어가 지닌 차별적 어의가 제대로 쓰이지 않을 경우, 사소한 오해의 누적이 가져올 혼란의 결과에 관해 가히 짐작된다. 

  그럼 여기서 한 단계 높여 과학의 언어와 시언어의 다른 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교통사고가 났어!”, “쌀값이 얼마인가?”와 같이 과학 언어의 경우, 개념표시에 의존하여 시제적 관심과 보고의 성격을 지녀 객관적인 말의 뜻 논리에만 의존한다. 시언어의 경우, “그 꽃 참 곱군!”. “그녀의 눈이 샛별같아!”처럼 말의 함축성을 중시하고 느낌과 태도 해석에 의존하고 있어 개인적이면서 비약적이고도 날카롭다. 즉 전자의 경우는 사물과 기호의 관계가 1:1의 관계로 성립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 관계가 1:무한대까지 의미 확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 어떤 경우에도 기호의 의미는 사물과 달리 하나의 체계를 지닌 텍스트를 전제로 한다. 하야카와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종류의 독서는 기호적 경험을 한다는 성격을 지닌다. 즉 성숙한 독자일수록 다양하면서도 수준 높은 간접경험으로 깊은 통찰력을 지닌 훌륭한 인간으로서 성장·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두 가지 문제는 책의 양과 질에 관한 것으로서 특히 이 시대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의 홍수를 겪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베스트셀러의 의의에 대하여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베스트셀러라 해서 반드시 문학적 가치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적 차원의 기호품으로 분류하고 시효성에 맞춰져 문학 관리자들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극작가 이오네스크의 말처럼 우리가 TV를 즐기지만 TV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드문 상황에서 인기 프로그램이 조작될 수 있다고 한 경우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으리라.

류근조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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