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대학원 첫 학기의 시작과 동시에 첫째 딸이 태어났다. 첫째 딸은 낮잠 재우기가 힘들어서 늘 아기띠로 안고 기본 30분 정도는 자장가를 흥얼거리며 걸어야 했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한 시간 가까이 안아줬음에도 자지 않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했다. “더 안아주면 자겠지. 2시간 걸으면 안 자겠어? 내가 해볼게.” 노래도 불러주고 장난도 쳐주면서 즐거운 기분 속에서 낮잠을 재우고 싶었지만, 아기는 결코 자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아기띠를 매어야 했다. 그렇게 첫째는 유치원 갈 때까지 낮잠 재우는 것으로 늘 힘들었다. 

  둘째 아들은 대학원 4학기 절반 정도 지나갈 때 태어났다. 둘째 아들은 바이러스성 천식으로 진단받고 감기만 걸리면 색색거리는 숨소리로 늘 호흡기 치료를 해야 했다. 언젠가 한 번 호흡이 힘들어 청색증이 왔고 근처 병원에 3일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 수액 주사를 팔에 꽂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바늘이 뽑힐까 봐 링거 스탠드 잡고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조금 먹다가 마는 둘째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나 여전히 가벼워 안아주기가 편하다. 

  셋째 딸은 대학원 6학기 절반 정도 지날 때 태어났다. 5월 5일 어린이날 아침에 태어났는데, 당시 병원 신생아실에 입원한 산모가 한 명도 없어서, 첫째랑 둘째가 호텔이라며 신생아실 복도에서 뛰어다니며 놀았다. 셋째를 낳고 돌쯤 지나 아내는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에 걸렸었는데, 당시 항바이러스 약물을 사용해야만 하여 셋째 딸의 모유 수유를 갑자기 끊어야만 했다. 엄마가 먹은 약이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이후로 셋째는 잠잘 때 항상 아랫입술을 쪽쪽 빨며, 동시에 내 귀를 만져야만 자는 버릇이 생겼다. 

  둘째까지는 주말에 쌍둥이 유모차에 태워 재우면서 실험실에 가 실험도 하곤 했는데, 셋째부터는 세 명이 탈 수 있는 유모차도 없고, 이제 첫째가 유모차 타면서 절대 자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에 나간다는 것이 상당히 모험이었다. 가족 외출의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늦게 시작한 학위인데, 그 기간 아이들 3명을 어떻게 키우는가 하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사실 나의 기여도는 작았고 아내의 공은 크다. 이렇게 말하면 애처가 느낌이 나지만 나는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다. 내 일이 아내의 힘듦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했었기에 못 할 말을 많이 했었다. 

  어제도 아이들이 잘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갔는데, 우리들 재워주면 안 되냐는 둘째 아들의 말에 “아빠 12시까지 이거 꼭 해야 해”하면서 노트북을 꺼내 자판을 두들겼다. 그리곤 새벽, 방에 가 아이들 옆에 누웠는데 따뜻한 아이들의 온기, 그리고 아내의 숨소리가 들렸다. 행복했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침에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

유희찬 교수
약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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