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만연한 세상. 유튜브에만 쳐보아도 낭만이 주제인 동영상과 그것을 동경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낭만을 말하며, 낭만을 꿈꾼다. 그만큼 이 시대에 낭만은 말하기 쉬운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세상에서 낭만은 점점 사라져 가는 듯하다. 말로만 낭만이 흔해지는 이 세상과 우리 대학생들은 모두 차가운 회색인 것만 같다.  

  낭만주의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도서관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아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뒤지던 와중 눈에 띄는 한 도서가 있었다. 작가 노발리스의 『푸른 꽃』이었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작으로 뽑히는 책이라고 해서 읽어 보았는데, 그렇게 재미있던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낭만주의라는 단어는 당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이후로 잊고 살다가 최근에 릴스, 쇼츠에 밴드 이세계의 <낭만젊음사랑>이라는 노래가 갑자기 마구 뜨면서 나의 삶에 낭만이라는 단어가 다시 한번 성큼 다가왔다. 이런 낭만주의에 대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보면 언제나 모든 것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나만의 낭만주의가 떠오른다. 먼저 낭만주의에 대한 개인적 정의를 내려보자면, 망설임 없이 부딪혀볼 수 있는 의지라고 설명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는 의지와 용기가 있다면, 이 세상의 체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규정을 초월하여, 각각의 꿈을 얼마든 실현할 수 있다. 새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즉, 정념과 의지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이성만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보다 개성 있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물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대학생에게 바라는 자질은 이런 것들이 아닌가?  

  요즘 사회와 같이 염세적이고, 이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개개인의 색을 잃고 땅에 처박힌다. 쇼츠, 릴스 같은 온라인에서라도 낭만을 찾아다니는 우리들은 다채롭던 색을 잃어버렸다. 위에 언급한 노발리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나의 의지가 나를 확정하듯 세계는 내 의지대로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세계가 나의 의지와 어긋난 모습을 보인다면 세계가 변질된 세계이거나, 세계에 상응하는 내 의지가 진정한 내 의지가 아니거나, 아니면 둘 다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던 것처럼, 우리 모두 일이 잘못되었을 때 무작정 나의 행동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문제는 내 행동이 아니라 변질되어 버린 이 세계구나! 라고 생각하고, 상처받아 주저앉지 않고, 훌훌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푸른 꽃을 상징으로 하는 이상향을 향한 헌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초인적인 의지만 있다고 한다면, 언젠가 모두를 벅차오르게 할 수 있는 그런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재는 탄생하지만, 영웅은 삶 속에서 만들어진다. 잃었던 자신의 색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이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각자가 생각하는 낭만을 이루어 가기를 바라면서 이글을 마친다. 

 

 

 

 

신지민 학생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1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