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

우리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먼 곳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흰 벽 앞엔 멀겋게 선 팔레스타인 모녀. 

소가죽 소파에 파묻힌 채 그걸 보던 너와 나. 

 

화면 하단으로 자막은 또 흐른다. 

 

“포탄이 밤사이에 날아와 백지의 건물 위로 빼곡히 구두점들을 찍었습니다.” 

!*"من فضلك أوقف الحرب"

우리 중 그 누구도 구부러진 모녀의 외침 위로 해설을 

번역을, 덧붙일 수 없었지만 

없음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완결되던 수두룩한 이야기, 

 

히잡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그 쨍쨍한 감정들은 

스크린 너머 불발탄처럼 우릴 향해 날아오기도 했다. 

제발 전쟁을 멈춰주세요!**  

나는 소리쳤지만  

TV 속 모녀에겐 네 말이  

전해지지 않을 거야. 하여 들리지 않을 눈부신 그 문장을  

 

Papago에 넣었고, 수역했고, 기어이 철근처럼 완강히 구부러뜨린 우리네들의 언어를 

 

나는 나의 Twitter에 게시했다. 

 

#제발 전쟁을 멈춰주세요 

من فضلك أوقف الحرب#

#please stop the war 

 

창문 상단으로 어둠은 또 흘렀고 

그날의 뉴스가 끝나자 TV를 끄며 넌 말했지. 

 

저기,  

방금 그곳 있잖아,  

지구는 지구인데 개중에 가자 지구라는 곳은 어딘가 조금 덜한 저 먼 곳의 소행성일까? 

 

너는 내게 물었고 나는 멀지 않아, 대답한다. 

 

* 제발 전쟁을 멈춰주세요! 

"!من فضلك أوقف الحرب"**  ─ 이 시를 볼 모녀를 위해 따로 아랍어 각주를 단다.

시 부문 심사평 : 선명하게 보고 표현하는 힘

올해 의혈창작문학상 투고작들은 전체적으로 작품에 대한 열의와 고르고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시는 결국 무엇을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고, 이 둘을 잘 결합했을 때 쓰는 사람의 개성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다. 요컨대 내용과 방법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체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시의 기본이고 핵심이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자신의 스타일로 녹여 표현하고 실현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의 오랜 훈련을 짐작하게 했다. <영혼은 거울에 흡수되어> 외 6편, <마드리드에서 쓰는 시> 외 6편, <가자 지구> 외 6편이 본심에서 최종 논의되었다. 

<영혼은 거울에 흡수되어> 외 6편은 몽상적인 시선으로 대상과 세계에 말을 건네고 그 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풍경에 닿는 과정을 스케치하는 시편들로 되어 있다. 세계는 딱딱한 경계가 아니라 부드러운 점성으로 연결되어 있는 오브제들의 집합이다. 시 <영혼은 거울에 흡수되어>의 말랑한 눈꺼풀, 미끄러지는 얼굴, 수증기가 되는 가족, 갈라지는 실이나 <네더포탈> 의 녹아내리는 햇빛, 일렁이는 얼굴, 축축한 발바닥, 울음을 토하는 시계 같은 오브제들은 이렇게 몽상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녹아내리고, 흘러내리고, 빨려가는 기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시는 물성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개성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개성이 어떠한 세계를 시현하느냐의 문제를 돌파할 수만 있다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쓰는 시> 외 6편은 잘 짜인 이미지와 언어 구사가 인상적이다. 적절하게 구성된 조형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으로 미루어 보아 오랜 습작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일상적인 현실의 시공간에 얇게, 절묘하게 스며드는 가공적 상황은 시를 풍부하게 만들어 내는 개성이 되고 있다.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배경 속에 가상으로 움직이는 한국 시인을 묘사한 <마드리드에서 쓰는 시>, 부정대명사 ‘아무’가 인격화되어 행위를 하는 <아무>, 서커스 동기를 전개하면서, 서커스를 관람하는 주체들이 관람의 대상인 원숭이가 되는 설정이 이루어지는 <어드벤처>와 <어드벤처가 아님> 같은 시들은 현실이 헐거워지고 상대화되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모색이 현상에 더 밀착해서 또렷하고 복합적인 시선으로 발전해 가길 기대해 본다. 

<가자 지구> 외 6편은 차분하고 관조적으로 일상과 생활,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을 전개해 나가는 시편들이다. 찻잔에 찻물을 따르며 물의 움직임을 그려가는 것으로 마음의 불안과 근심을 살피는 <차 마시는 시간>을 비롯하여 비행선 안의 내부 묘사와 승객들, 그리고 밖으로 펼쳐지는 세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공간적으로 확장된 존재의 의미를 묻는 <밝은 잠> 같은 시들은 모두 유려한 언어로 현실과 현상에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언어가 구부러지지 않고 바로 세계를 접촉하기에 대상은 명료하게 직접적으로 가시화된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 <가자 지구>를 장원으로 선정한다. <가자 지구>는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이 한창인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 모녀의 절박함과 그것을 TV로 보면서 전쟁을 멈추어달라는 인도적 공감이 결합되어 있다. 눈에 띄는 한글, 아랍어, 영어의 동원은 언어의 기표적 시각성을 자극한다. 또한 전 세계에서 전쟁을 반대한다는 의미를 제시하고 있지만, 가자지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우주의 어떤 소행성이라 생각하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인도주의의 피상성을 드러낸다. 표현과 내용에서 모두 선명하고 힘 있는 작품이기에 당선작으로 정했다.  

심사위원=이승하·이수명(본심), 황인찬(예심)

시 부문 당선자 김원호 학생 interview: 결코, 멀지, 않은

사진재공 김원호
사진재공 김원호

 

우리의 일상은 평화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지구 어딘가에선 여전히 전쟁의 위협에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김원호 학생(우석대 식품영양학과)은 전쟁의 이야기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님을 전한다. 사람들의 관심 밖 이야기를 전하고 이 끔찍한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시를 써 내려간다. 이 ‘전쟁’의 이야기를,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시인을 함께 만나보자. 

 -시 부문 장원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얼마 남지 않은 대학 생활을 의미 있게 마무리 짓고 싶었어요. 대학생의 신분일 때만 참여할 수 있는 의혈창작문학상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지원했죠. 단순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장원을 수상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시 <가자 지구>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현재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 써보고 싶었습니다. 전쟁은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만, 그 실상을 체감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무기력한 내 모습에 죄책감 아닌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 죄책감으로부터 시작해 전쟁이 도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임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가자 지구>는 강렬한 메시지와는 반대로 담담한 어조를 사용했다고 느꼈어요. 

 “전쟁을 먼 곳에서 바라보는 사람으로서 느낄 만한 감정을 표현하려 했어요. 격하고 과장된 감정을 담았다면 그건 거짓일 거예요. 내가 느낀 진실한 감정, 차분하고 담담한 감정을 담은 어조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너’와 ‘나’가 파묻혀있는 ‘소가죽 소파’는 무슨 의미인가요. 

 “소가죽 소파란 본래 활동하던 것이고, 풀을 뜯던 것이고, 생생히 살아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 파묻혀 있는 동안 그런 것들을 의식하거나 인지하지 못합니다. 마치 어딘가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가자 지구’를 소행성에 빗대어 표현하셨는데요. 

 “『어린 왕자』에 등장한 소행성처럼 몇 걸음 걷다 보면 한 바퀴를 돌 만큼 작은 소행성을 떠올리고 썼습니다. 시 속의 ‘너’와 ‘나’ 혹은 시 바깥의 많은 사람은 전쟁을 너무나도 먼 이야기로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란 마치 소행성처럼 몇 걸음 걷다 보면 다다를 수 있는, 그러니까 절대 멀지 않은 이야기임을 전하고자 했어요.” 

-글을 작성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저는 글을 쓰는 일이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글을 쓰는 게 어렵다며 불평하는 것, 또 그 불평을 글로 옮기기는 너무나도 쉽죠. 그렇게 만들어진 글이 좋은 글로 남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글들은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안 쓰고자 하는 글’의 종류가 점점 많아질수록 ‘좋은 글’의 윤곽이 명확해져요. 그 과정을 탐색하는 것이 저만의 글쓰기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떤 시인이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멋쟁이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멋쟁이기만 하고, 아직 시인이 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멋쟁이에 불과한 제가 시인이, 멋쟁이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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