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 전병전 학생(단국대 문예창작과), <돌이 찾는 집>

올해로 의혈창작문학상이 33회째를 맞이했습니다.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청년 문학도를 위해 문예창작전공 학생회와 중대신문에서 마련한 자리인데요. 전국 전문대 이상 학부 재학생(휴학생 포함)을 대상으로 11월 6일까지 시와 소설 두 부문을 공모했습니다.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구분해 진행했는데요. 시상식은 13일 102관(약학대학 및 R&D센터)에서 진행되는 ‘서라벌·중앙대 문예창작전공 70주년 총동문회 행사’ 때 함께 이뤄질 예정입니다. 이번 의혈창작문학상에서는 시와 소설 부문에서 각 1개의 장원 수상자가 선정됐습니다. 소설 부문에선 전병전 학생(단국대 문예창작과)의 <돌이 찾는 집>이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작품 전문>

돌이 찾는 집

1

지금 생각해보면 매일 보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노을이었다. 어릴 때 살던 아파트는 8층이었고 주위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해가 떨어지는 시간에는 붉게 물든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대여섯 살의 나는 엄마가 주방에서 저녁을 차리는 동안 동네 형이 사용하다 질려버렸다는 레고로 작은 집을 지었다. 통창을 지나 거실 전체를 빨갛게 물들이는 노을이 작은 레고를 쌓아올려 만든 단단한 성을 둘러싸면, 나는 고개를 주방으로 돌려 밥이 되었나 확인을 하곤 했다. 그때쯤이면 항상 전기밥솥이 기차 소리를 내면서 뜨거운 김을 뿜어냈다. 그리고 구수한 향기.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곧 아빠가 돌아올 시간이라는 걸 알려줬고 나는 반복되는 그 일상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런데 그날만은 노을에 붙잡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핑크빛에서 연보라빛으로, 노란빛에서 다홍빛으로, 색색의 빛깔로 변하고 또 겹쳐 보이던 그 노을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책의 한 구절,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온몸이 심장으로 변해 쿵쾅거릴 때처럼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깨우쳤던 것 같다. 생명과 죽음, 일상과 비일상. 어렸던 그날의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체화한 것이다.

그 일련의 과정 속에 아빠의 죽음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아픔은 내 마음의 일부가 언제든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고, 동시에 숨을 쉬고 눈을 감았다 뜨는 행위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만 느껴지는 나의 생존이 사실은 언제든 땅속으로 고꾸라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먼 훗날에, 노을을 보고 느낀 충격에는 그런 것들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일을 반추하는 데는 부차적인 상상이 덧대지거나 누락되기도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꼭 그러했고 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노을이 땅으로 기어들어갈 때까지,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이미인, 밥 먹어, 하고 부를 때까지 노을을 바라봤다. 이외의 것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엄마는 내가 펑펑 울었다고 했다. 어린 애가 온몸을 떨면서 울고 있었다고. 아빠가 죽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한 달하고도 이틀이 지나서야 인정하게 되었는지 엄마는 알 수 없었고 그건 나도 그랬다. 그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고 말하던 엄마의 슬픈 얼굴은 얼마나 젊었고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기억이 나는 건 엄마가 밟고 있던 붉은색의 작은 레고 조각과 어두워진 집안에서 큰 소리로 울려 퍼지던 밥솥의 칙칙 소리, 그리고 우리가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건 분명하다.

2

엄마는 고장난 밥솥에 폐기물 스티커를 붙였다. 벌써 이십 년을 넘게 사용한 녀석은 며칠 전부터 증기 배출 꼭지를 흔들지 못했고 엄마는 때마침 잘 되었다며 녀석을 버릴 때가 되었다고, 드디어 새로운 밥솥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어딘가 기가 죽어 보였다.

“됐어. 우울해하지 마. 진안으로 가면 아침 점심 저녁 솥밥 지어서 먹는다며.”

“너는 애가 정이 없냐.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 아빠를 닮았어.”

나는 엄마의 짐을 차에 옮겨 실으며 빨리 가자고 채근했다. 엄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려는데 엄마가 소리쳤다. 이미인! 멈춰! 돌을 두고 왔다, 얘. 엄마는 차 문을 박차고 나가 다시 빌라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까 버렸던 전기밥솥과 함께 돌아왔다. 돌을 두고 왔다는 건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전기밥솥을 버린다는 것만큼. 엄마는 한 번 정을 준 것에는 온 마음을 다했다. 그러니까 외삼촌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뒤에도 돈이 얼마나 급했으면 가족한테까지 사기를 쳤을까 하고 바보같이 마음을 쓰며, 한 명이 살기에도 빠듯한 내 원룸으로 돌과 옷가지와 다 죽어가던 전기밥솥을 들고 왔겠지.

돌은 어디서 구해온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손에 알맞게 잡히는 크기의 돌 하나를 매일 같이 닦았다. 빛이 드는 낮이면 창가에 두고 밤이 되면 손수건을 덮어 옆에 두고 함께 잠까지 잤다. 엄마는 꼭 돌이 살아있는 것처럼 대했는데, 어느 날은 돌에 간 미세한 실금이 보고 돌의 주름이라고 했다.

“그게 왜 돌의 주름인데?”

“뭐든 늙으면 주름이 생기잖아. 동물은 주름이, 나무는 나이테가, 돌에는 금이. 사람들은 돌이 영원한 줄 착각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아. 비바람에 깎이고 깎이다 보면 언젠가는 부서져. 그럼 작은 모래알로,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작은 조각이 되는 거야. 너와 나처럼.”

엄마는 돌을 매만지듯 자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주름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 충분히 젊어.”

“그래? 엊그제 티브이에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돌로 집을 짓는 사람이 그러더라. 자기가 꼭 돌 같다고. 벽에 붙어있을 때는 집인데, 시간이 지나 떨어져 나오면 그냥 돌이 되어버린대. 근데 그게 꼭 나 같더라.”

엄마는 내가 있는데도 그렇게 말했다. 꼭 내가 자기를 밀어낸다는 것처럼. 성인이 되어 집을 나가겠다고 했을 때, 더는 금전적인 지원은 필요 없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게 물었다.

“왜?”

“왜냐니?”

“왜 엄마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은데?”

“되돌려 줄 자신이 없으니까. 미안한데 나는 엄마의 노후를 책임져 줄 수가 없어. 내 몸 하나 건사할 정도. 딱 그 정도만 벌 수 있을 것 같거든.”

노랗게 뜬 얼굴로 가만히 내 어깨를 토닥이며 알겠다고 말했던 엄마는 반년 전 재산 전부를 날리고 내게 얹혀살았다. 그리고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번 주말에 외출하고 돌아온 엄마가 진안에 집이 하나 생겼다며 내게 이사를, 딱 이사까지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노래를 틀었다. 가수 조영남의 ‘인생은 미완성’은 주방에서 요리할 때나 키우던 식물에 물을 줄 때, 그리고 아빠의 묘 앞에서는 꼭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마는 노래.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불러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타향인 걸. 외로운 가슴끼리 사슴처럼 기대고 살자. 인생은 미완성…….”

노래를 부르다 까무룩 잠든 엄마가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진안까지는 한 시간가량 남아있었다. 엄마는 고생한 내게 점심을 사주겠다며 전주에서 콩나물 국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을 해서 그런지 배가 꽤 고팠다. 나는 엄마가 알려준 한옥 마을 근처의 콩나물 국밥집으로 차를 몰았다. 짧게 기지개를 켜던 엄마가 내게 집은 이사 갈 집은 알아봤냐고 물었다.

“알아보는 중이야. 청년 주택은 아무리 신청해도 당첨되지를 않네.”

“어디로 가게?”

“어디가 중요한가. 지금은 돈에 맞춰서 가는 게 중요해. 반지하든 어디든. 학교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내 돈에 맞춰야지.”

“살 집이 마땅치 않지?”

“마땅치 않은 게 아니라…… 없어.”

지금 사는 집도 몰고 다니는 차도 군대에 간 동기의 것이었다. 녀석의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아 나는 원룸과 차를 반납해야 했다. 일 년 동안 죽어라 일해서 모은 돈으로 학자금 대출을 조금 갚았고 밥을 먹었고 가끔 차를 몰았고 또 알바를 하면서 망가진 몸 이곳저곳을 고치는 데 썼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집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는 곳은 집값이 비쌌고 그곳에서 멀어질수록, 강을 하나 건넌다든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몇 개의 동을 지나친다든가…… 그러면 엄마의 말처럼 마땅치 않은 집이 있기는 했다. 살기에 마땅치 않은 그런 집들. OECD 회원국 중 하나인 한국에, 외국인들이 꼭 놀러 와 보고 싶다던 서울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빌딩과 자동차가 많았던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런 집이 있었다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믿기 힘든 집. 그곳이 미래의 내가 몸을 누일 집이었다.

도착지 근처라는 내비게이션의 알림과 동시에 허름한 콩나물 국밥집이 나왔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엄마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제의 맑고 빛나는 눈, 귓가를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웃음소리, 긴 머리카락과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은은히 풍겼던 하얀 목덜미, 저 멀리 하얗고 작은 손을 흔드는 제가,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제가 나타났다.

3

간단한 안부 인사를 건네던 제는 어제 만났다 헤어진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나를 대했다. 당황스러운 나와 달리 엄마와 제는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콩나물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서 이 이상한 관계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시간을 가지기로 한 뒤 연락이 없던 애인과 엄마와 내가 셋이 만나서 밥을 먹는다. 마지막 밥알까지 싹싹 긁어먹을 때까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막걸리잔에 모주를 따라 먹는 엄마는 왜 제를 불렀을까.

“이유가 뭐야?”

엄마와 제가 동시에 나를 쳐다봤고 나는 엄마를 보고 다시 한번 말했다.

“제를 데려온 이유가 뭐냐고.”

“이사하는데 집 청소 좀 도와달라고. 왜? 제가 너무 보고 싶었어?”

어머머, 하고 나를 놀리던 엄마보다 얘는 보고 싶었으면 먼저 연락을 하지 그랬어, 문자 한 통 안 하더니, 하고 내 속을 긁는 제가 더 신경 쓰였다. 시간을 갖자고 한 사람이 저렇게 웃으며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목이 메서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던 빈 막걸리잔을 제에게 내밀었다.

“나도 모주 줘.”

“안 돼. 운전해야지.”

“왜. 모주가 무슨 술이야, 음료수지.”

“알코올 이 퍼센트 함유. 이건 명백히 술이야.”

볼 터치를 한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제의 모습을 보니 술은 술이었다. 맥주 한 잔이 주량인 주제에 모주 한 병을 다 마신 제, 이제 보니 모주는 술이 아니라 음료수 같기도 하다고 말하면서 배시시 웃는 제,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제는 아직도 아름다웠다. 혹시 내가 아직 제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챈 엄마가 자리를 만든 걸 아닐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데 엄마가 내게 속삭였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야.”

제는 셋이 있는데 귓속말은 반칙이라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댔다. 엄마는 내게 작은 팁을 준 거라고 에둘러 말했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제의 엄마 같은 그 모습이 얼마나 열이 받던지.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의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웠고 뒤늦게 따라나온 제와 엄마는 믹스 커피를 홀짝이며 내 옆에서 제의 담배를 나눠 폈다. 둘은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둘이서 떠들었다. 그러다 내가 집을 구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고 제는 엄마의 집에서 함께 사는 건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다 피운 꽁초를 작은 통조림통에 집어넣으며 엄마 집? 하고 물었다.

“응, 이번에 지은 연희 씨 집.”

제는 엄마를 연희 씨라고 불렀다. 나는 항상 그 점이 마음에 걸렸는데 엄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름 뒤에 씨를 붙이면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어머님이라고 하는 건 어떠냐는 나의 말에 제는 뭐라고 했더라. 거리를 두는 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나저나 엄마가 지은 집이라니. 나는 집을 지을 돈이 엄마에게 없다는 걸 알았다. 혹시 어디선가 또 사기를 당했나 걱정이 됐다.

“엄마가 무슨 돈이 있어서 집을 지어?”

“나 참, 얘는 나를 뭐로 보고. 엄마랑은 뭐든 주고받고 싶지 않다며. 엄마는 혼자서도 잘 사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제가 건넨 담배를 깊게 빨고는 짧아진 꽁초를 통조림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제의 옆자리에 앉겠다며 뒷자리에 올라탔다. 내가 운전사인가. 괘씸했지만 또 그다지 화낼 일은 아니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뒷자리에 앉은 제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민? 왜 네 이름이 민이야?”

알바를 지원할 때 쓰려고 뽑아뒀다가 뒷좌석에 놔둔 이력서를 본 듯했다.

“엄마가 지어준 이름을 이렇게 바꿔도 돼? 이미인. 얼마나 예뻐. 아름다운 사람이잖아.”

엄마가 진지하게 거짓말을 하는 탓에 제는 다시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미인, 아닐미에 사람인. 아직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뜻으로 엄마가 지어준 이름은 미인이라는 단어 자체도 그 속뜻도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건 무슨 마음인지. 나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정면만 바라봤다. 반응하면 더 웃어댈 게 뻔했다.

“연희 씨는 뜻이 뭐예요?”

“인연연에 아름다울희. 아름다운 인연들로 가득한 인생을 살라고 지어주셨대. 우리 아버지 멋쟁이지?”

“와. 완전 센스있다. 우리 아빠는 그냥 막 지었대요. 출생 신고를 하러 가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그제야 저를 태명으로만 불렀다는 사실, 그리고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이름을 뭘로 짓지…… 이제 보자…… 하다가 이제라고 지었대요. 웃기죠?”

엄마는 원래 명작들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파박 전기가 통하듯 떠오르는 게 아니냐고 하면서 이제, 하고 발음하더니 이름이 아주 예쁘다고 했다. 엄마는 알고 있을까. 제의 부모님은 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손찌검을 일삼고 매일 술을 먹는 지겹고 지겨운 스토리의 아빠 밑에서 자란 제는 사랑으로 가득했다. 사랑은 받은 만큼만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철학을 부숴버린 사람. 제는 항상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다시 노래 부르는 엄마와 올라온 취기에 코를 골며 자는 제를 태운 차는 굽이굽이 감도는 산길을 달렸다. 하나의 규격으로 똑같이 만들어진 아파트나 빌라로 빽빽한 서울과 달리 진안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여유가 넘쳤다. 말의 귀처럼 생긴 마이산이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차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깨끗한 독립 주택 앞에 멈췄다. 나 몰래 숨겨둔 비상금이 있었나. 이 층의 독립 주택은 겉면이 모두 새하얀 색이었고 앞에는 작은 마당이 나 있어 채소나 과일을 키울 텃밭을 만들거나 예전부터 엄마가 말했던 꽃밭을 만들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자다가 깬 제는 다 왔네, 하며 하품을 길게 내뱉었다. 어느새 옆에서 잠든 엄마를 깨우는 제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차에서 내리자 막 초가을로 접어들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자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러 여행 온 느낌이 들었고 나는 엄마에게 부탁해 하루 정도는 자고 갈까 고민했다. 차에서 내린 제는 잠깐 가지고 나올 것이 있다며 하얀 집으로 뛰어갔다. 엄마는 창문을 내리고 달려가는 제의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제야, 나는 그곳이 엄마의 집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새하얀 독립 주택은 제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엄마의 집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지도 몰랐다. 엄마와 어울리는 집, 그건 저런 깔끔하고 단단한 집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집이 아니라는 것보다 제가 엄마와 이웃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의 집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뭐야? 제가 왜 여기 살아?”

“이번에 엄마랑 같이 이사 왔어, 이웃사촌 하기로 했거든. 왜?”

엄마의 뻔뻔한 태도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헤어질지도 모르는 자식의 애인과 이웃사촌을 하는 엄마의 마음을 좀처럼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제가 집에서 작은 화분을 들고 나왔다. 제는 당황한 내 얼굴을 보고도 어깨를 으쓱하며 차에 올라탈 뿐이었다. 제에게 따져야 할지 엄마에게 따져야 할지 아니면 내가 무어라 말할 게 없는 일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엄마는 자신의 집으로 가려면 조금 더 가야 하니까 차에 타라고 말했다. 나는 제를 흘겨보며 차 문을 열었다.

4

차는 삼 분여를 다시 달렸다. 그리고 멀리서부터 집의 형태라기에는 허술하고 난잡한, 돌로 만든 구조물이 나타났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조금 더 멀리에 뒀다.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차가 돌 구조물에 가까워지자 엄마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저 집에 앞에 세우면 돼.”

세게 밀면 무너질 것 같은 돌담 안에는 집이라고 할 수 없는 모양새의 구조물이 자리했다. 건축허가를 받고 지었다는데 허가를 왜 내준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형편없는 집이었다. 돌과 돌 사이에 엉망으로 발린 시멘트를 보니 엄마가 집을 지었다는 게 인력을 구해서 지은 것이 아니라 엄마의 손으로 직접 지었구나 싶었다. 내 표정을 본 제가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주에 삼사일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더니 집을 짓고 있었구나, 생각하며 돌담을 손으로 살짝 밀었다. 가까이에서 만져본 돌담은 생각보다 더 조잡했고 견고했다.

엄마는 내게 짐 옮기기를 맡겼다. 그리곤 작은 화분에 든 꽃을 심을만한 좋은 장소를 물색했다. 크지도 않은 마당을 제와 함께 꼼꼼하게 둘러봤다. 나는 엄마의 몇 없는 옷가지와 빨간 스티커가 붙은 밥솥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그나마 외관보다는 나았다. 안쪽은 시공을 맡겼는지 천장과 바닥이 깔끔했고 딸려있는 작은 주방도 짜임새가 있었다. 그래도 이런 곳에 이사할 돈이면 서울에 작은 원룸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여기서 앞으로 뭘 먹고 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와 보니 엄마와 제는 돌담 입구에 앉아 빨간 꽃을 조심스럽게 심고 있었다. 나는 제 옆에 쪼그려 앉아 무슨 꽃인지 퉁명스럽게 물었다.

“장미야.”

꽃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봐도 장미는 아니었고 더 물어보지 않았다.

“장미 아닌 거 알면서 왜 안 물어봐?”

제는 다시 내 옆구리를 찔렀다.

“어차피 물어도 대답 안 해줄 거 알아.”

“너는 아직도 그러네.”

제는 제 할 말만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제의 얇은 팔목을 잡아 세웠다. 무슨 말이야? 제는 내 눈을 바라봤다. 제가 우리의 관계에 의문을 느꼈을 때, 아니, 제가 나라는 사람을 알아버렸을 때의 눈이었다. 조금은 촉촉하고 빛이 조금 죽은 눈. 나는 그 눈이 싫었다. 제는 자신의 눈이 빛을 잃은 건 나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변하지 않았어, 단 한 번도. 내 눈은 우울한 너를 담아서 색을 잃은 거야. 그러니까 내 눈을 탓하면 안 돼. 내가 너를 탓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네가 변하길 바라는 마음이 무너져 버린 것뿐이야, 라고 지금처럼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너는 노력하질 않잖아. 뭐든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봐.”

“또 그 이야기야? 그때 내가 틀린 말 했어? 우리가 돈이 어디에 있어서 결혼을 해. 졸업할 나한테 남은 건 학자금 대출금뿐인데, 그걸 갚으려면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봐야 서울에서 집다운 집 하나 못 구하잖아. 월급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월세가 오르고 집값이 올라, 돈을 모아도 모아도 서울에서 집 사는 건 불가능한데 가족이 되고 싶다는 네 말에 어떻게 동의를 해? 우리는 평생 결혼 못 해. 그건 지금도 똑같아.”

말을 뱉고 나니 제의 집이 떠올랐다. 깔끔하고 견고한 새하얀 전원주택. 그 집을 팔면 서울에 작은 빌라 한 채를 살 수 있을까. 이제는 결혼할 수 있을까. 근데 그럼 제한테 너무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무슨 수로 저런 집을 살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와 다시 내 의견을 굽히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돈 없고 집 없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허리를 붙잡고 일어나며 끙 소리를 냈다.

“너 평생 혼자 살 거야?”

“그럼. 돈이 없는데.”

“아니, 그렇게 혼자서 땅굴 파서 들어가 살 거냐고. 돈이 없으면 왜 사랑도 못하니? 안 되겠다. 따라와 봐.”

엄마는 나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제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주방으로 들어가 사과와 과도를 꺼내왔다. 엄마는 사과를 깎으며 이전에 살았던 아파트의 옆집 딸 이야기를 꺼냈다. 이런 상황에 옆집 딸이라니.

민지라는 옆집 딸은 연애 고수였다. 그녀는 애인이 끊기질 않았는데 부모님과 집에서 함께 살았고 학생이라 돈도 없었다. 그래도 만나는 연인마다 나중에 함께 살자, 가족이 되자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민지의 데이트 코스는 정말 별 게 없었다. 만나는 애인들 모두 학생이었고 돈이 넉넉지도 않아서 주로 걷다가 분식을 먹거나 여유가 생기면 노래방이나 영화관에 갔다가 주변 맛집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니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의지가 중요한 거라고. 민지는 주머니가 비어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빈 적은 없다고 엄마는 진중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민지는 졸업하고 잘 산대?”

나는 그렇게 살아온 민지의 미래가 조금 궁금해졌고 제가 깎아준 사과를 깨물며 넌지시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손가락 몇 개를 접었다.

“하나, 둘, 셋, 넷. 걔가 그때 열넷이었으니까 지금은 열여덟.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다니고 있겠네. 연애는 지금도 잘하고 있나 몰라.”

엄마의 말을 들은 제는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얼이 빠진 내 얼굴을 보고 저러는 거겠지. 나는 엄마에게 속아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제의 집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엄마도 곧 예순인데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책임지기가 싫어 남에게 부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제가 싫어할 수밖에 없는 사람 같았다. 가을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다가 잘 익은 황금빛 벼들을 훑으며 저 멀리 사라졌다. 길 양옆으로 널따란 논밭이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벼 사이사이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물결을 만들었다. 개구리 같기도 두꺼비 같기도 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으니 제의 하얀 단독주택이 나왔다.

바리스타로 여러 곳에서 상을 탔던 제는 자신이 로스팅한 커피 원두를 팔고 싶다고 했다. 집 뒤편의 통유리가 설치된 창고에는 제가 이전에 보여주었던 로스팅 기계가 놓여 있었다. 성공했구나. 잘됐다. 헤어질지도 모르는 제를 응원하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무래도 제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사람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심으려는 듯 밭갈이를 한 마당은 다른 땅과 달리 진한 갈색이었다. 옆을 보니 월동 시금치 씨앗이라고 적힌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시금치를 심으려나. 엄마도 시금치를 좋아하는데. 둘이 입맛이 맞아서 다행이었다. 그러면 둘이 함께 밥 먹을 날이 하루는 더 생길 거고, 그럼 서로 조금이라도 더 챙길 수 있을 거였다. 엄마를 걱정하는 만큼 제를 생각했고 또 둘이 서로 아끼는 만큼 나는 나를 사랑했다. 나를 사랑하는데 남을 사랑하지 못한다니. 내 꼴이 참 웃겼다.

비닐에서 시금치 씨앗 하나를 꺼내보니 연한 회색과 갈색이 섞인 동그란 씨앗이 나왔다. 동그란 구의 양옆으로 뾰족한 가시 두 개가 나와 있었다. 언뜻 보면 악마처럼 생기기도 한 씨앗은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어딘가 모가 났고 날카로워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 게, 아니, 사람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뾰족한 날을 세우는 모습이. 이 작은 악마가 자라나 시금치가 되려나.

냉장고에 빈 적이 없었던 시금치 무침과 항상 식탁 위에 한 줄이라도 놓여 있던 김밥,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던 물렁한 시금치가 떠올랐다. 자르지 않은 김밥의 끝을 베어 물면 끊어지지 않은 시금치 줄기가 딸려 나와 어쩔 수 없이 구멍이 뚫린 김밥을 먹어야 했던 날들. 그러고 보니 엄마는 한 번도 나를 굶긴 적이 없었다. 요양원에서 보호사로 일하던 엄마는 학교를 마치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온 내가 혹여라도 굶을까 항상 김밥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작고 단단한 씨앗을 엄지와 검지로 굴리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엄마의 돌무더기 속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5

엄마와 제는 주방에서 고장 난 전기밥솥을 고치려 애먹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솥밥용으로 나온 작은 솥이 있었는데도 엄마는 전기밥솥에 힘을 썼다. 제는 밥솥을 들고 바닥을 살폈다. 서울에서 살펴봤을 때도 전기밥솥을 고치지 못할 게 분명해 보였고 제 역시 관련 지식이 없으니 고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둘은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옆으로 돌렸다가 뒤집어놓았다가 코드를 뽑았다가 다시 꼽았다가 하며 밥솥을 괴롭혔다. 그때, 밥솥의 눈처럼 보이는 작은 LED 조명에 초록 불이 들어왔다. 엄마와 제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서 나에게도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두 손바닥에 가볍게 손바닥을 맞댔다.

갓 지은 밥처럼 따듯한 손으로 엄마는 쌀을 씻었다. 그리고는 곧 해가 저물 거라면서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다. 나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서울까지 올라가는 동안 허기가 질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제는 엄마의 옆에서 칼과 도마를 챙겨 김치를 썰었다. 작은 그릇에 부침가루를 붓고 김치를 섞더니 금방 김치전 반죽을 만들었다. 제가 요리를 이렇게 잘했던가. 그러고 보면 제와 나는 데이트를 할 때 대부분 외식을 했었다. 내 집에 데려오기에는 너무 좁았고 그렇다고 제의 집에만 가기에도 뭣했다.

나는 하릴없이 거실에 누워 밥을 기다렸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 그 소리가 따듯한 질감으로 다가왔고 엄마의 집이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눈을 감자 몸에 항상 깃들어 있는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엄마의 작고 허름한 돌집인데도. 아파트에서 살았던, 아빠가 살아 있었던 때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때가 떠올랐다.

밥솥의 기차 소리가 선잠이 들었던 나를 깨웠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삼십 분은 흐른 것 같았다. 거실 가운데에 놓인 식탁에는 김치전과 시금치 무침, 그리고 김부각과 두부가 차려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보니 엄마와 제는 주방 바닥에 앉아 대화를 나누며 밥 뜸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나를 발견한 제가 내 머리를 가리켰다.

“집 구한다더니 머리에 제비집을 지었네?”

엄마는 제의 말을 거들었다.

“제비들한테 알려 줘. 집 판다고.”

나는 못들은 체하며 밥이 다 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금방이야. 왜? 서울 빨리 가야 해?”

“아니, 그건 아니고. 밤에 운전하면 힘드니까.”

“생색은. 글로브 박스에 수고비 넣어놨어.”

“아니, 연희 씨. 이 정도는 도움받을 수 있지, 뭘 그래?”

“괜찮아. 주머니에 있던 잔돈 500원 넣어놓은 거니까.”

그럴 줄 알았다. 기대도 하지 않은 터라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주방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좁은데 여기에 앉아야겠어?”

엄마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내가 좀 더 편히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내주었고 제는 무릎을 가슴 앞으로 모아 팔로 감싸 안았다. 내가 껴서 그런지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고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히 헛기침하며, 이제는 자주 보지 못할 엄마와 어쩌면 평생 다시는 볼 수 없는 제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둘이 이웃이니까 서로 도와가며 잘 살고. 엄마는 혹시 여기서 살기 힘들면 말해. 이 땅이라도 팔면 서울에 작은 집 하나 못 얻겠어?”

시골의 땅값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게 얼마 되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 손을 가볍게 두드리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따듯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여기에 제가 사는데 뭐가 걱정이야. 제 걱정도 하지 마. 내가 잘 돌볼 테니까. 새로운 가족이 생기니까 엄마는 오히려 좋다, 얘”

“그래. 가족처럼 지내. 싸우지 말고.”

“가족처럼? 연희 씨랑 나는 진짜 가족인데?”

제의 눈빛이 차가웠다. 마당에 심어진 꽃처럼 붉어지는 얼굴은 꼭 우리가 멀어지기로 확정을 지었던 날의 모습 같았다. 나는 제가 왜 화를 내는지, 그리고 진짜 가족이라고 하는 건 뭔지 이해가 되질 않아 엄마를 쳐다봤다. 도움을 요청하는 내 시선에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른 세계의 사람인지 외계어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한 건……. 아니, 둘이 왜 진짜 가족이야? 너랑 나랑 형제가 아닌데. 엄마, 제가 배다른 내 동생이야?”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내 편을 들어주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엄마는 꼭 제의 편을 들고 있는 것 같았고 화가 났다. 그런데 제는 나보다 더 흥분해서 내 무릎을 손가락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진짜 가족이라니까! 연희 씨랑 나는. 알아들어?”

“아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니까.”

“거리를 두는 건 마음이라고. 이 등신아.”

제의 손가락이 강하게 내 가슴을 찔렀다. 옷, 그리고 안의 피부, 그리고 그 속에 있을 나의 마음마저. 추운 겨울날 명동 거리에서 내 가슴을 찌르던 제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날카롭게 서로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손톱과 말들. 아직 가족이 되기는 이르다, 너와 내가 가족이 될 미래를 그리기에 나의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그러니 우리 일단은 이렇게 지내자, 하는 나의 말들을 듣던 제는 내게 시간을 갖자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거리를 두는 건 마음이라고.

시간을 가지기로 했지만, 사실 우리의 관계는 결국 끝나버릴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제는 몰라도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제의 마지막 말, 그건 내가 이해할 수는 있어도 체화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마음은 옷도 피부도 돌도 벽도 뚫어. 그래서 마음은 단단하고 날카로운 거야. 마음은 그런 거야, 미인아.”

제의 말에 따르면 나는 거리를 두기 위해서 마음의 날을 세우는 사람이었고 제는 거리를 가까이하기 위해서 마음을 날카롭고 단단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과거에 쏘았던 화살이 현재의 나에게 날아와 가슴에 꽂혔다. 나는 가슴에 꽂힌 제의 말을 뽑기로 결정했다.

“마음이 뭔데? 엄마랑 가족이 되는 데 필요한 건 겨우 마음뿐이니? 나는 그렇지 않아. 집이 있는 네가 집 없는 나를 어떻게 이해해? 당장 내일 몸 누일 곳조차 불확실하고, 어디에도 돌아갈 곳이 없어서 불안한 내 기분을 도대체 네가 어떻게 이해한다는 거야?”

순간, 전기밥솥의 꼭지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주방에는 습하고 고소한 냄새가 가득 찼다. 고장 났던 전기밥솥이 쏟아낸 희뿌연 증기가 우리 셋 사이를 메꿨다. 나는 증기를 빨리 날리기 위해 손부채질을 했다. 마음에 박혀 있던 화살을 뽑아내니 그동안 쌓아놓았던 말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와 엄마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마주 보고 이야기해야만 하는 말들이었다. 증기가 옅어지고,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제의 두 눈과 볼을 타고 흘러 턱에 매달린 제의 눈물방울이 드러났다. 울고 있는 제에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띠리리—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는 전기밥솥이 취사 완료를 알렸다. 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제를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하얀 집까지 달려가는 제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는 취사가 끝난 밥솥을 열어 하얀 김이 나오는 밥을 이리저리 섞었다. 그리고는 내게 김밥을 챙겨줄 테니 가는 길에 굶지 말고 꼭 먹으라고 당부했다. 그 목소리에서 다정함과 체념이 뒤섞인 오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엄마는 느릿느릿 김밥을 말았다. 순간, 부엌에 난 작은 창으로 쏟아진 노란빛이 엄마의 등에 닿았다. 엄마는 노을에 휩싸여 멀어져가는 시간의 빛에 물들기 시작했다. 노을은 노란빛이 보라색으로 바뀌고 다시 붉은색이 되어 집을 불태울 듯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냈다. 부엌을 가득 채운 빛 속에는 색색의 작은 먼지들이 떠다녔고,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집 앞의 오래된 가로등의 필라멘트가 힘겨운 소리를 내며 빛을 냈다. 엄마가 칼로 도마를 내리치는 경쾌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김밥 자르지 마. 그냥 먹을래.”

“그럴래?”

검은 비닐봉지에 김밥 세 줄이 담겼고 남은 세 줄은 도마 위에 있었다. 제와 함께 나눠 먹을 저녁이겠지. 문 앞까지 배웅 나온 엄마는 애완용 돌을 매만질 때처럼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미인아, 엄마가 일하는 요양원에서 백 살까지 살다가 가신 김 씨 할머니가 있거든. 그 할머니가 그러더라.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근데 말이야, 혼자 먹을 때는 밥심이 안 난대. 그래서 일인실을 쓰면서도 밥때가 되면 꼭 엄마를 불렀어. 같이 먹자고. 한 세기를 살다 보니 외로움도 누구보다 많이 겪었을 분이 그러더라. 외로운 게 제일 무섭다고, 그건 밥을 굶는 것 같다고. 허기가 지기 시작하면 뭔가를 채워넣을 때까지 점점 더 허기가 지는데 그게 꼭 외로움 같다고. 근데 밥을 혼자 먹으면 그게 꼭 외로움을 되새김질하는 것 같대. 가족이 별거니. 마음 닿고 숟가락 맞닿으면 가족이지. 그리고 그 공간이 집이지. 그러니까 미인이 너도 꼭 밥 먹어. 내일부터는 꼭 집에서 밥 먹어. 알았지?”

엄마는 작은 점이 될 때까지 길 위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울음이 터질까 봐, 우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릴 리가 없었지만, 엄마가 들을까 속도를 냈다. 눈물이 맺혀 시야가 뿌옇게 변해 가는데 도로 위에서 양손을 들고 있는 누군가가 앞에 나타났다. 나는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았고 타이어가 타들어 가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차가 멈췄다.

제는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자 제는 부어버린 내 눈을 보고 울지 마, 라고 작게 읊조리고는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조수석에 던졌다.

“시금치야. 들고 가서 먹어. 너 좋아하잖아.”

제는 차창에서 떨어지더니 손을 가볍게 흔들며 새하얀 집 안으로 사라졌다. 어둠에 뒤덮인 집의 작은 창들 사이로, 노란빛이 부드럽게 새어나왔다. 이제 다시는 이곳으로 올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붉은 노을처럼 천천히 내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가볍게 액셀을 밟았다. 차에서는 노랫소리도 코 고는 소리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해진 차가 왜인지 어색했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소리를 내는 건 바스락거리는 검은 비닐봉지 두 개가 전부였다. 나는 흙내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뒤섞인 차를 몰고 노을이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6

고속도로가 막혀 국도로 돌아가는데 기찻길이 나왔다. 차단기가 내려가 정차를 하고 김밥 한 줄을 꺼내 꽁다리를 물어뜯었다. 역시나 잘리지 않은 시금치가 딸려나왔다. 긴 시금치를 면발 먹듯 후루룩 삼켰다. 시금치가 빠져나온 김밥에 작은 구멍이 났다. 그게 꼭 제와 엄마로부터 빠져나온 나의 모습 같기도, 또 제에게 찔려 구멍이 뚫린 내 마음 같기도 했다.

곧이어 기차가 요란한 소리와 큰 진동을 내며 빠르게 지나갔다. 기차에서는 치치---소리가 나지 않았다. 연기를 자욱이 뿜어내던 그 기차들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경적소리가 치치---소리를 대신했다. 과거의 그 소리에는 출발을 알리는 격동의 힘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소리는 단편적이고 시끄러운 전자음에 밀려났다. 마음이 있는 낭만의 추억이 차가운 미래의 현실에 무너지듯. 그제야 나는 내가 찾아야 하는 집도 사라져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물이 잘 나오고 층간소음이 없고 지리적으로 위치가 좋은, 그런 건 구조물에 불과했다. 이제 내가 돌아가는 곳을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의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차장에 도착해 글로브 박스를 열자 정말 오백 원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실금이 간 동글한 돌이 있었다. 돌은 모난 곳 없이 매끈했고 무게도 적당히 무거웠다. 나는 돌을 잃어버려 걱정하고 있을 엄마에게 전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역시나 엄마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 수고비로 돌까지 챙겨 넣었다.

돌을 어디에 둬야 하나. 작은 돌을 둘만 한 마땅한 장소가 떠오르질 않았다. 엄마는 어디에 뒀더라. 기억을 되새겨가며 해가 들어오면 엄마가 돌을 놓았던 창가 앞에 섰다. 거리의 밝게 빛나는 조명등 덕분에 창틀 주변이 잘 보였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작은 홈이 창틀 바로 앞에 나 있었다. 돌을 갖다 대자 원래 돌의 자리였던 것처럼 꼭 들어맞았다.

자신이 돌 같다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돌집을 지었을까. 외롭지 않고 싶어서 제를 찾아갔을까, 아니면 제가 엄마를 따라간 걸까, 그도 아니면 서로 찾아갔을까. 단단하고 날카로운 마음으로 지붕을 뚫고 돌담을 무너뜨리고 벽을 부수고 피부에 닿아 가족이 된 걸까. 그럼 나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담배를 찾으려 주머니를 뒤지는데 날카로운 무언가에 손끝을 찔렸다. 제의 텃밭에서 들고 온 시금치 씨앗이었다.

소설 부문 심사평 : 다채로운 힘으로 균형을 이루다

올해 의혈문학상에 응모한 작품들은 대체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진지하고 개성 있는 작품들로 내면에 대한 성찰과 욕망에 대한 인식, 상처에 대한 치유 등 주제가 다양하고 서사화의 방식이 다채로웠다.  

이번 심사에서는 주제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힘과 창의적인 문장의 힘, 개연성을 주는 구성의 힘 그리고 작가만의 스타일인 고유한 힘들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 독자의 설득과 공감을 이끌어냈는지를 중점으로 <돌이 찾는 집>과 <수면과 눈금>, <당신의 하우스 헬퍼> 세 작품을 최종심에 올렸다.   

<돌이 찾는 집>은 조밀한 구성과 디테일한 묘사로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 이 작품은 집을 잃은 엄마와 조만간 집을 마련해야 하는 나와 자신의 옆집으로 함께 텃밭을 가꾸고 씨를 뿌리자고 엄마를 초청한 전 여자친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자아를 보호해 주고 육신을 쉬게 하여 바깥 활동을 가능케 해주고 정서적 기억을 담아 정체성을 강화해 주는 역할을 하는 집’을 통해 생존의 토대와 안식처가 흔들리는 현대인의 불안과 결핍, 방황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잠정적인 이별 상태인 여자친구 제는 자신의 옆집에 남자친구 엄마의 집을 마련해주어 이웃을 넘어 한 가족이 되고자 한다. 현실에 대해 냉소적으로 거리 두기만 하던 나는, 견고한 돌에 균열을 내고 그 틈새에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엄마의 정성과 여자친구 제의 성의에 차츰 마음이 열리게 된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 돌과 가능성을 가득 품은 씨앗의 대비를 통해 인물들의 심리적 흐름을 잘 이끌어내고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진행한 점이 돋보였다. 냉혹한 현실에서도 돌의 실금과도 같은 틈새를 발견하고 주머니 속의 마른 씨앗에서 희망을 품게 되는 주인공에게서 독자들은 마침내 작은 숨이 터지고 따스함을 전달받게 된다. <돌이 찾는 집>을 수상작으로 결정한 이유이다.  

<수면과 눈금>은 외적 전망과 내적 응시에 관한 이야기로 전망대 꼭대기 층에 근무하는 나와 지상층에 근무하는 친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수직적인 높이인 전망과 수평적 높이의 수면이라는 대비를 통하여 수평선 안의 권역을 내적 응시인 눈금으로, 그에 따르는 외적 전망을 수면으로 비유하여 통찰을 이끌어 내고자 하였다. 주제의 기저에 예감, 여운, 여지 등을 두고 인물들의 심정과 가변적인 배경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미적 성취는 하였으나 화자의 설명과 내면의 흐름만으로 대부분의 서사를 이끄는 점, 주제 구현이나 이야기의 진행이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점, 수면과 눈금이라는 규제적이고 규정적인 주제와는 방향이 다른, 모호한 에피소드의 나열과 완결되지 않은 결말 등이 뚜렷한 사유를 구성해 내지 못하였다.  

<당신의 하우스 헬퍼>는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외부와 단절하고 지내던 주인공이 바깥으로 한 발 나서는 이야기로 같은 또래인 집주인의 자녀를 보고 자신의 상처를 마주 하고 치유해 나가는 내면의 과정을 그렸다.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와 흐름은 좋았으나 성급히 결말에 도달하는 등 전체성의 구성이 다소 미흡했다. 

심사위원=방재석·박혜영(본심), 이준희(예심)

 

<당선자 인터뷰>

소설 부문 당선자 전병전 학생 interview 집이 되고 싶은 돌을 찾아 

사진제공 전병전
사진제공 전병전

사회 속 공동체 의식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러나 소설 <돌이 찾는 집>은 이런 사회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희망을 찾아낸다. 전병전 학생(단국대 문예창작과)을 만나 따스함을 주는 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당선 축하드려요!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2년 정도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수상해서 졸업 전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소설로 처음 받는 상이라 더 뜻깊고 기분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소설을 쓰라는 의미로 상을 주신 것 같아 계속 꾸준히 쓰려고 합니다.” 

-돌이라는 소재가 인상적인데요. 

“예전에 돌로 집을 짓는 사람들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왜 그들이 돌로 집을 짓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죠. 그렇게 관심 있게 찾아보다 돌을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되었어요.” 

-자전적 소설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항상 글을 쓸 때 인물을 설정한 다음,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인물에 저의 일부분을 담아냅니다. 그래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한테 돌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부모님 세대가 ‘돌집’에 사용된 돌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부모님은  보살핌을 받다가 다시 저희에게 보살핌을 나눠주시는데요. 돌 또한 집의 일부일 때도 있지만 돌집에서 떨어져 나가면 개별적인 ‘돌’로만 남습니다. 소설 속에서 어머니는 직접 돌집을 지어요. 돌은 어머니에게 다시 단단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합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시금치 씨앗에 특별한 뜻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씨앗은 성장하기 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잖아요. 그 씨앗이 자라날 수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거든요. 마지막에 주인공이 공동체적 삶을 향해 나아갈지, 현실에 치여서 외로운 삶을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걸 씨앗으로 표현했습니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나요. 

“요즘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존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쓸 수 있게 도움 주신 이서수 작가님, 해이수 작가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설원 작가님과 저희 전영경 교수님한테 감사 인사를 꼭 드리고 싶어요. 믿어준 가족과 1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소설을 썼던 형민, 정현, 성빈, 민지한테도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많은 독자가 제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한 명의 독자라도 제 글로 인해 무언갈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작가가 되는 게 지금 제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의혈창작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집중해서 쓸 때 나오는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그 행복을 기억하며 오랫동안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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