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영상에서 캐릭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취한 장면이 등장해 논란이 됐습니다. 캐릭터의 손 모양이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는 이유에서였죠. 일부 네티즌들은 홍보영상의 원화·동화를 맡은 외주업체 직원 A씨가 SNS 계정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며 A씨의 해고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장면의 콘티를 만든이는 타 기업의 40대 남성으로 밝혀졌습니다. A씨는 해당 캐릭터가 등장하는 장면 100여 컷을 그린 애니메이터 30명 중 한 명이었고, 그마저도 문제시된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을 담당했죠. 사건의 실체는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찍기와 사상검증으로 드러났으나 이미 A씨는 직장을 잃은 후였습니다. 

  남성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 사건이 무고한 피해자를 낳은 채 여성 혐오로 막을 내렸다는 점에서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집게손가락이 등장한 장면은 캐릭터가 움직이는 도중에 쓰인 한 컷에 불과했거든요. 이들은 이 찰나의 장면에 왜 이리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일까요. 페미니스트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했던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요. 

  이성 혐오·노인 혐오·자국 혐오·외국인 혐오. 그 양상은 다양하지만, 필자는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혐오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 곳을 잃은 분노의 도피처가 돼주고 있다는 점이죠. 심화하는 빈부격차, 높은 물가상승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취업난에 불안과 분노를 느낀 이들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문제의 원인으로 누군가를 지목한 것입니다. 

  뉴욕대의 심리학자 존 조스트 교수는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인지적으로 많은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문제를 가급적 작고 구체적으로 명시할 때 개인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불안과 무기력을 느끼게 되므로 눈에 보이는 대상을 비난함으로써 불안을 완화하려 한다는 것이죠. 

  존 조스트 교수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실로 많은 혐오 표현을 만들어 냈습니다. 성별에 따라, 세대에 따라, 국적에 따라 각양각색의 혐오 표현을 만들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죠. 어지간한 단어에 ‘충’ 자만 붙이면 인칭대명사가 되니 말 다 했습니다. 하지만 혐오는 끝없이 확산할 뿐 어떠한 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는데요.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향해 ‘사다리 걷어차기’를 당했다며 비난하곤 하지만 논의는 언제나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예죠. 혐오성 의제는 휘발성도 강하거든요. 

  페미니스트가 사라지면 먹고사는 게 나아질까요. 586세대가 사라져야 나라가 좀 바로 설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그럴 일도 없을 거고요.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시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권오복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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