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들으며 사는 삶은 평온하다. 나 또한 그랬다. 세상엔 분명 여러 이야기가 있을 테고 그걸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내겐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다. 사회면 위 시끄러운 사건들은 내 일이 아니었을뿐더러, 잘 알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문사에 들어갔다. 매주 끝없이 생기는 취재 아이템을 보며 당장 학교에서만 해도 수많은 이야기가 생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몰래 낙서한 그래피티부터 외국인 전임 교원 처우 문제까지. 학교에는 그저 내 일만 해치우며 살아갔더라면 영영 몰랐을 이야기들이 존재했다. 

  취재차 청소 노동자분들의 휴게실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만약 그 전에 누군가 내게 청소 노동자분들의 휴게실이 어디 있는지 물었더라면, 난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을 것 같다. 막연히 건물 어딘가 한구석에 있지 않을까, 추측만 어렴풋이 했을 테다. 하지만 양캠 건물을 하나씩 돌며 가 본 휴게실은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햇볕도 들지 않는 지하, 지상이더라도 혼자 누우면 꽉 차는 비좁은 공간. 관 같은 그곳에 직접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말 그대로 잠깐 숨만 돌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정말 몰랐다. 실은 알려는 의지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청소 노동자 휴게실 문제’라는 이야기는 내 삶과 별로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마주하고 나니 그동안 애써 무시한 수많은 이야기가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나는 내 삶을 살아간다는 이유로 모르는 척 해왔던 것같다. 이후 이 이야기가 보도되며 학내의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그때 알았다. 신문이 말하는 이야기엔 꽤 큰 힘이 있다는 걸. 

  월요일, 17장 남짓의 편집계획서에는 대학보도부부터 문화부, 사회부, 여론부, 사진부, 그리고 뉴미디어팀이 발견한 수많은 이야기가 세상에 보이길 기다린다. 기자들은 각자가 맡은 이야기를 신문에 담아내기 위해 부리나케 전화를 걸고 수십 통의 취재 요청 메일을 돌린다. 직접 현장을 찾아 발로 뛰며 이야기에 숨을 불어 넣기도 한다. 가끔 난항을 겪기도 하지만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최후의 최후의 최후까지 그들은 독자가 맡은 이야기를 위해 함께 달린다. 

  매주 찍히는 A3 정도 크기의 갱지 다발엔 이런 이야기가 잔뜩 있다. 그냥 살아간다면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 정말 가까이 가지 않으면 모르는 이야기들. 17명의 기자들은 학교 속 숨은 소식부터 유독 더 추운 겨울을 보내는 우리의 이웃까지, 어디든 만나러 가서 시선을 쏟는다.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세상 속 이야기를 모은다.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지 않도록. 메아리로 남지 않을 수 있도록.  

  세상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중대신문은 여러분의 삶이 이야기로 시끌벅적해질 수 있도록, 중앙대를 넘어 세상 속 작은 단면까지 볼 수 있도록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편집국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봉정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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