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이 낳은 폭발적 변화의 시대다. 콘텐츠의 트렌드는 쉽게 바뀌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페이지를 요구하며 새로고침 3초의 시간조차 참지 못한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에 관해 배우다 보면 빠른 속도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옳은 일인가 자연히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논의 지점으로부터, 김초엽 작가의 2019년 작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제목을 따왔다. 

중대신문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올드 미디어다. 물론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노력도 존재하지만, 1947년부터 꾸준히 캠퍼스 내외 이야기를 써내려 온 기록은 ‘대학 신문의 효시’의 자신감을 증명한다. 특히 김지우 기자의 ‘한국의 헬렌 켈러, 그들을 위한 설리번은 없었다’를 읽어보면 우리 일상에서 소외되어있는 시청각장애인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더 자극적이고 짧은 콘텐츠만이 환영받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환경에서 충분히 의논되어야 할 사회 문제들은 존재감을 잃는다. 우리는 디지털 혁신에서 잠시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고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뇌하며, 무엇보다 올드 미디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 또한 라디오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 언제나 뉴미디어 속 바래진 올드 미디어의 매력을 재확인하는 일은 즐겁다.      

프랑스의 디지털 사상가 폴 비릴리오는 시간 경쟁을 타파하는 피크노렙시의 실천을 강조하며 ‘속도 조절자’가 되기를 역설했다. 우리는 광속(光速)을 갈망하나, 결코 그럴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결국 현대인이 갖춰야 할 덕목은 다급하게 세상의 흐름을 쫓기보다는, 스스로 맞는 속도를 되찾고 흐름을 직접 만들어 가는 데에 있다. 중대신문이 앞으로도 사회의 건강한 속도 조절자로 기능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곽나영 학생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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