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때때로 거대한 시련의 파도에 휩쓸릴 때가 있다. 파도에 덮쳐진 이들은 대개 출렁이는 물결 속으로 손아귀에 쥔 꿈을 하릴없이 떠나보낸다. 반면 파도 위에 올라타 자신의 길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이도 있다. 노윤 동문(연극전공 14학번)은 가슴을 짓누르는 수압에도 젊음의 패기로 자신만의 노래를 파랑에 흘려보냈다. 남몰래 훔친 땀과 눈물은 훗날 그가 명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됐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연료 삼아 순항 중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다연 기자 almostyeon@cauon.net

“데뷔한 지 6년이 지나고 있는데요.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은 그대로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여전합니다. 한국 뮤지컬을 논할 때 제 이름이 거론될 정도까지 올라가 보고 싶어요.”
 

작은 손에 마이크를 쥐고 노래하던 사진 속 어린아이는 관객들의 사진첩을 가득 채우는 어엿한 배우로 성장했다. 신예 때부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는 특유의 강단과 끈기로 지금도 끊임없이 전성기를 갱신하고 있다. 소년부터 중년까지 ‘안 되는 역할 빼고 다 되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 노윤 동문(연극전공 14학번)의 연기 세계를 1열에 앉아 관람해 봤다. 

  -중앙대 연극전공에 입학한 계기는. 
  “어머니의 권유로 가볍게 음악을 배우던 중 뮤지컬을 관람하게 됐는데요. 그대로 뮤지컬에 반해버리곤 뮤지컬배우를 꿈꾸기 시작했죠. 막연히 연기 분야에선 중앙대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중앙대에 합격한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1년 남짓 동안 연기 두 개와 노래 세 곡밖에 준비하지 않았거든요. 첫 번째로 준비했던 곡은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조연이 부르는 2분짜리의 곡이었는데요. 그 곡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도박이었죠. 지금과 달리 목소리 톤이 높을 때라 면접관님들께 고음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보여드리자는 생각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무엇보다 ‘밑져야 본전이니 까불어 보자’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하다. 
  “연극 <유리동물원>으로 수업했던 <기초연기 2>입니다. 단순히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게 된 수업이죠. 작중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지 고심하고 상대역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해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연기를 완성하는 그 과정에 매료되면서 연기가 재밌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중앙대 필수교양 <ACT>도 수강했다고. 
  “군복학 후, 1학년 때 F학점을 받은 강의를 재수강하려 보니 폐지됐더라고요. 그 과목을 대체한 과목이 <ACT>였습니다. 처음 만난 타과생들과 조를 꾸려 함께 영상을 제작하는 새로운 경험이었죠. 조원들과 함께 연기하는 게 부끄러웠지만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학교 근처 봉구스 밥버거에서부터 큰길로 이어지는 곳에서 촬영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학교 축제 때 참가자들이 노래로 겨뤄 1등을 뽑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뮤지컬배우 지망생인 만큼 한 번 나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같은 연극전공의 형과 1차 오디션을 봤지만 바로 탈락했어요.(웃음) 우리 실력이 1차 오디션에서 떨어질 정도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뮤지컬을 해야 하는지 30분이 넘도록 열변을 토했던 기억이 납니다. 심사위원들이 봤을 땐 제가 잘 못 불러서 떨어뜨렸을 테니 판정에 불만은 없어요. 하지만 당시엔 저를 회의에 빠지게 한 경험이었죠.” 

  -데뷔 직후 반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다. 
  “2017년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로 데뷔한 뒤, 1학기에 복학하지 않고 더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계속 봤는데요. 서류 심사와 최종 심사를 가리지 않고 죄다 떨어졌어요. 그러다 여름방학마저 끝날 시기가 됐죠. 데뷔했음에도 스스로 준비가 덜 됐음을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더 많이 공부해 실력을 쌓지 않으면 제가 설 자리는 없겠다고 느꼈죠. 한 번 더 떨어지면 시원하게 복학하려던 찰나 뮤지컬 <트레이스 유> 오디션에 합격했어요. 당시엔 괴로웠지만 되돌아보면 좋은 밑거름이 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트레이스 유>에서 큰 사랑을 받았는데. 
  “2018년 2인극 <트레이스 유>에서 ‘우빈’을 연기했습니다. 본래 창작진이 생각하던 제 역할은 상대역 ‘본하’였지만 어린 나이에서 나오는 치기로 우빈을 따냈죠. 2018년 당시 60회 가까이 우빈으로 무대에 섰는데요. 그러다 보니 본하를 연습하는데 입에서 계속 우빈의 파트가 나와 작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웃음) 
  <트레이스 유>는 작중 인물의 선택에 따라 매회 다른 결말로 끝난다는 게 큰 특징입니다. 매회 어떻게 변화를 줄지 고민하는 일이 어려우면서도 엄청난 매력이죠. 공연 중, 상대가 대사가 아닌 무슨 말을 해도 받아줄 수 있다는 느낌이 가끔 드는데요. 올해 <트레이스 유>에서 역할을 서로 뒤바꿔 공연했던 날이 그랬죠. 본래 우빈의 넘버를 본하인 제가 부르기도 했어요. 좀 더 특수한 장치를 심어서 연기했던 회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스 유>에 참여하는 건 아마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어요. 제 머릿속의 모든 경우의 수를 뽑아서 공연했거든요.(웃음)” 

  -배우로서 가장 큰 강점은. 
  “얼굴과 목소리입니다. 키도 크고 얼굴선이 뚜렷하다 보니 어릴 적부터 성숙하단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요. 그 덕에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배역들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또래들과 있으면 학생처럼 보이지만 선배들과 있으면 동년배처럼 보이기도 하죠. 목소리의 경우 얼굴과 어울리게 만들고 싶어서 군대에서 목소리를 낮추는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이런 얼굴과 목소리를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누아르 장르도 연기해 보고 싶네요.” 
 

사진제공 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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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대학로에서 노윤 동문을 만났다. 그는 2021년 '곤 투모로우'에서 갑신정변을 일으킨 혁명가 김옥균 역을 맡았다. 사진 배은성 기자
10월 18일 대학로에서 노윤 동문을 만났다. 그는 2021년 '곤 투모로우'에서 갑신정변을 일으킨 혁명가 김옥균 역을 맡았다. 사진 배은성 기자

  -연기를 대하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예전에는 인물의 나이나 역사 등 1차원적인 설정을 먼저 정해놓고 연기를 시작했는데요. 뮤지컬 <곤 투모로우>의 ‘김옥균’을 연기하며 인식을 전환하게 됐습니다. 갑신정변을 다루는 작품으로, 김옥균은 서사를 이끄는 묵직함이 필요한 역할인데요. 저는 20대고 같은 배역을 맡은 선배들은 모두 40대셨어요. 선배들과 같은 묵직함을 따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습실 앞 벤치에서 혼자 울었던 적도 있죠. 그러던 중 인물에 고정적인 설정을 부여하는 순간 벽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방과 모사도 중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내 연기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곤 투모로우> 이후로는 인물을 만드는 데 있어 좀 더 편하게 열어두고 고민하게 됐습니다. 
  <곤 투모로우> 첫 공연 당시,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도 제가 연기하는 김옥균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됐어요. 하지만 김옥균 선생님이 실제로 정변을 일으켰던 나이는 제 나이에 가장 가까웠는데요. 그런 만큼 ‘어리면 어때, 난 나대로 가겠다’고 다짐하며 공연했죠. 공연이 끝났다는 콜을 듣자마자 혼자 울면서 연습했을 때의 감정이 올라오면서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데뷔한 지 6년이 지나고 있는데요. 무대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하면서 즐겁게 놀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사실은 그대로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여전합니다. 한국 뮤지컬을 논할 때 제 이름이 거론될 정도까지 올라가 보고 싶어요. 뮤지컬은 저와 평생 함께할 동료죠. 
  물론 연극에도 도전할 계획입니다. 노래가 아닌 말로써,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단어로 대화하는 게 기대돼 연극은 아껴두고 있죠. 사실 연극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 뮤지컬을 할 만한 목상태가 나오기 힘든데요. 그래서 시기상 아쉽게 떠나보낸 작품들도 있죠. 연극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이 맞을 때 좋은 연극을 만나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꿈을 찾아 방황하는 중앙대 학생들에게 한 마디. 
  “방황하세요.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각자 훨훨 나는 시기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옆에 데리고 있으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각박한 현실에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옆에 두기만은 하세요. 그리고 여러분만의 기준을 만들어 두십시오. 저는 10년 안에 뮤지컬배우로 성공하지 못하면 바로 관두겠다고 정해뒀는데요. 이런 식으로 목표를 설정한다면 방향이 보일 거예요. 
  제가 참여한 작품은 아니지만 뮤지컬 <풍월주>의 넘버 <너의 이유>를 중앙대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삶의 힘을 북돋우는 가사가 일품이죠. 저도 그 노래를 통해 힘을 얻곤 합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시작입니다. 제 연기의 시작은 중앙대니까요. 동시에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죠. 제 모든 행보의 첫 발자국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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