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주 6일이라는 시간을 할애하는 건 내 생의 조각들을 당신으로 물들이는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너는 나의 일부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너를 아주 단념하기로 마음먹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순간을 사랑하려 하는 사람은 결국 네 곁을 떠나게 되리라. 너의 결함마저 품어내는 법을 이제는 알고 있으므로, 나는 너와 작별하지 않는다. 

  숱한 좌절 끝에 드문 성취를 해내고야 마는 너는 인생을 닮아있더라. 성패의 여부가 불확실한 땅에서 기꺼이 공을 던지고, 치고, 잡는다. 몸을 던져내는 투혼은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패를 감히 실패라 부를 수 없게 한다. 아웃 카운트가 올라가도, 경기에서 지더라도 피보다 진한 땀방울만은 식지 않는다.  

  한국시리즈 2차전, 3:4로 지고 있던 경기는 기적 같은 홈런으로 5:4가 되었다. 역전을 이뤄낸 2점 홈런은 1차전 패배했던 상실감을 완벽히 지워내며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그리고 3차전, 9회초 2아웃이라는 벼랑 끝 상황에서 터진 역전 3점 홈런은 경기를 승리로 이끌 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를 가져왔다. 정상에 목말라 있던 선수들은 포효했고 팬들은 기뻐서 웃다가 울었다. 

  나의 아버지가 스물한 살 때 목격한 LG 트윈스의 우승을, 같은 나이의 내가 맞이했다. 이십구 년 만의 우승을 LG 트윈스의 팬으로서 맞이한 것은 이같이 운명적인 순간이다.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성공이 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야구고 인생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고 자식을 내칠 수 없듯이, 야구를 보는 팬들 또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바꿀 순 없다. 무한한 응원에 힘입어 절실함을 가지고 우승을 위해 달려올 수 있었다고, LG 트윈스의 감독은 말했다.  

  야구를 계속해서 보는 데에는 사실,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보다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점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영웅이 등장해 단숨에 위기를 해결해버리는 것은 진부한 클리셰일 것이나 야구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야구는 이러한 기적을 각본 없이 써 내려가며 영화·드라마와 같은 허구가 아닌 현실로 구현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야구는 ‘기적의 이데아’다.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기적을 꾸며내지 않고(꾸며낼 수도 없고) 오히려 그 자체로 기적의 양태를 현실에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야구에 ‘기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수많은 실패가 점철돼 만들어지는 야구에서의 기적. 어떤 세계에서보다 확률이 중요하지만, 가능성은 언제나 가능성일 뿐이다. 야구는 확률이 아니라 불확실 끝에 거두어지는 확신의 순간으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야구를 사랑하는가. 기적을 믿고 꿈꾸기에 그렇다. 실패를 거듭하고도 바라볼 수 있는 너머가 야구에는 있다.  

  그래서 나는 너와 작별하지 않는다.

박주형 대학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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