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나는 고양이가 좋다. 그중에서도 단연 길고양이가 좋다.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면서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길고양이의 삶이 부럽다. 자주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야만 하는 건 조금 불편하겠지만, 그만큼 다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 6일 발행된 제2050호에는 인권 문화제와 관련된 기사가 1면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읽는 내내 중대신문이 소외된 것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김지우 기자의 실버존 기사가 인상 깊다. 노인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지금, 그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우리는 인지해야만 한다. 소외된 노인 안전과 무관심한 우리-소외된 미래의 우리-에 대해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와닿는 기사였다. 

불편함을 위한 불편함이란 말을 아는가? 차별, 편견, 혐오 등의 완화를 위해서 우리는 또 다른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경쟁과 도태, 발전과 소외, 현실과 이상. 이번 신문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긁어댄 생각들이다. 소년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 떠오른다. “모두를 챙길 수는 없어. 선택해야 해.”, “모두를 챙기기를 선택한다.”, 그것이 내가 이번 신문을 읽고 생각한 중대신문의 방향성이다. 많이 고되고 외로운 일일 것이다. 혹자는 그러한 작업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며 비판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살아있는 정의가 기사의 형태로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중대신문의 제2050호는 자유로웠고, 편견 없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았고, 내가 보지 못하던 것들을 가리켜 일러주었다. 그러나 자주 세상을 견뎌내야 했다. 때때로 도망쳐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려운 길을 가고자 하는 중대신문을 응원한다. 기자들의 펜촉에 끝내 원하는 바가 묻어나기를 바란다. 

 

 

 

 

 



박성준 학생
철학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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