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대학 생활 중 인생 강의가 있으신가요? 저는 수년 전 들은 글쓰기 교양 강의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년을 앞두신 교양대학 노교수님의 강의. 글은 자고로 직접 느끼고 써봐야 한다며 두 편의 에세이를 쓰게 한 뒤 이 중 하나를 발표시키시고, 이를 바탕으로 지필고사까지 내시던 교수님이셨습니다. 그저 학생들의 무난한 평점을 보고 신청한 이 강의가 제 인생 가치관을 잡아주는 ‘인생’ 강의가 될 줄은 몰랐네요. 

 매일 같이 양복을 다려 입으시고 수업보다 30분 일찍 와서 강의실에 계시던 교수님. 젊은 사람들을 마주하려면 깔끔하게라도 입어야 한다고 신경 쓰셨고, 학생들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져 보려고 오전부터 강의실에 오셔서 일부러 친근한 대화를 건네시곤 하셨죠. 또 학생이 돈이 어디 있냐며 교양 강의에서라도 돈 아끼라고 출판 교재를 마다하시고 본인이 직접 만든 수백 쪽의 교재를 무료 배포하던 교수님. 우리를 참 많이 ‘생각’해 주셨습니다. 

 ‘일촌광음불가경’, 교수님께서 알려주시고 이젠 제 인생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학기 중 학생들이 쓴 에세이를 하나하나 손수 첨삭하신 교수님께서는 종강일 가까워 학생마다 덕담 한마디와 함께 회신을 주셨죠. 당시 학업과 일시적인 사회생활의 병행, 그리고 인간관계와 진로 고민으로 점철된 제 ‘나의 삶’ 에세이가 인상 깊으셨다던 교수님이 남겨주신 한마디. ‘일촌’, 아주 짧은, ‘광음’, 밤낮의 시간이라도, ‘불가경’, 가벼이 여기지 말라. 교수님께서는 제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들을 알차게, 선하게, 의롭게, 잘 보냈으면 함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젊은 여러분의 나날들은 어떤가요? 대학생, 20대, 청춘 등, 이 시기에만 가질 수 있는 수식어에 걸맞게 알찬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지요. 20대 후반을 앞둔 나이에서 저의 20대를 돌아보니, 왜 교수님께서 알참과 함께, 선함, 의로움을 써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알차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후회 없이 한 번뿐인 이 시기를 보내려면 나와 주변을 살피며 올바르게 지냄이 수반되어야 하더군요. 

 중앙인의 선한 20대를 기원합니다. 물론 선함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선과 악은 누가 규율하며, 그 경계가 어디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다만 각자가 생각하는 선함의 정의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을 것임은 자명할 것입니다. ‘배려’라는 단어 자체가 ‘짝 배’에 ‘생각할 려’가 합쳐진 어원을 가진 것처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타인에 관한 생각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내 옆의 고마운 이에게는 고마움을, 미안한 이에게는 미안함을 생각해 보고, 그 마음을 오롯이 건네는 게 쉬운 시작이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에게 ‘고마워, 미안해’ 여섯 자의 진심을 전하는 연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오종현 학생 
교육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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