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암흑기 ‘잃어버린 30년’의 배경 ‘플라자 합의’는 역대 가장 친미 성향을 보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시절에 이루어졌다. 나카소네 총리는 스스로 방위비 분담 의사를 보인 데다 소련의 위협에 맞서 일본을 ‘불침 항모’로 만들겠다며 무장을 시작해 미국의 환심을 산다. 결국 미국은 가장 친미적인 일본 총리를 압박해 일본 경제를 부러뜨려 버린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친미반중 기조를 명확히 했다. 가치와 동맹을 중시하는 외교는 언뜻 듣기는 좋으나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적 감각이 필요하다. 롤모델은 이미 존재한다. 춘추전국시대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이다.  

  정나라는 패권국 진(晉)과 도전국 초(楚) 사이에서 자주 고초를 겪는다. 심지어 한 해에 晉, 楚에게 각각 정벌 당해 항복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子産은 진과 초를 분석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한다. 북방의 晉은 패권국이 된 이후 약 200여 년간 패자의 위치를 지킨다. 패권국이라는 말은 듣기는 좋으나 회맹을 실시하고 국제 분쟁에 군사 지원 및 조정의 의무를 진다. 즉, 패권은 상당한 비용 및 수고와 맞바꾸는 명예였다. 진나라는 이러한 비용을 상쇄하는 이익을 원했다. 초나라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초나라는 중원국가로부터 오랑캐로 취급받고 있었기에 자신들의 능력과 수준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과 대우를 원했다. 子産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였을까? 子産은 절묘하게 晉-楚 양국이 원하는 바를 들어준다. 진나라에는 이익을 주고 초나라에는 명분과 인정을 주었다.  

  과거 子産과 같이 한국은 중국에는 명분을 제공하고 미국에는 경제적 이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는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고 고용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특히 반도체 영역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요구는 들어주는 편이 좋다. 중국이 가장 필요로 하지만 기술의 부족으로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 반도체다. 중국은 세계 반도체 매출의 32%를 차지하는 반도체 최대 수입국이다. 하지만 여전히 IT 생태계의 기반이 되는 부품과 개발툴은 서방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은 역내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반도체 부문에서 계속 협력한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다. 양국 모두 한국에 반도체를 갈구하는 만큼 칼자루는 우리 손에 있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한 당시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부터 방문했을 정도이며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펼치면서도 삼성전자 시안 반도체 공장만은 가동을 허락했을 정도로 몸이 달아있다.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 당시에도 반도체 분야에서는 보복하지 못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반도체를 레버리지로 삼아 원하는 바를 얻어내야 한다. 현재 한·중·일 정상회담이 조율 중이다. 동맹과 가치도 공유하면서 그사이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를 날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겐 子産이 있는가? 나카소네가 있는가? 

 

 

 

 

 


심호남 교수
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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