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정연지 감독
사진제공 정연지 감독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로움이 당연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사진제공 허지예 감독

여성이 꼭 여성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여성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여성의 서사로 풀어내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져요.

청룡영화상에 진출한 영화 〈안녕의 세계〉의 스틸컷이다. 사진제공 정연지 감독
청룡영화상에 진출한 영화 〈안녕의 세계〉의 스틸컷이다. 사진제공 정연지 감독
청룡영화상에 진출한 영화 〈두 여자의 방〉의 스틸컷이다. 사진제공 허지예 감독
청룡영화상에 진출한 영화 〈두 여자의 방〉의 스틸컷이다. 사진제공 허지예 감독

첨단영상대학원 재학생이 연출한 단편영화 두 편이 ‘44회 청룡영화상(청룡영화상)’ 청정원 단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안녕의 세계>를 연출한 정연지 감독(영화영상제작전공 석사수료)과 <두 여자의 방>을 연출한 허지예 감독(영화영상제작전공 석사 4차)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룡영화상 본선 진출을 축하한다. 

정연지 감독: “제 작품이 청룡영화상에 올랐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랐어요. 사실 제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증명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번 청룡영화상을 계기로 제 노력을 널리 알릴 수 있어 기쁩니다.” 

허지예 감독: “사실 저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분이 좋은 것보다 ‘왜 내가 됐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제 영화를 제가 제일 인정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지만 주변에서 제 영화가 좋다고 말씀해 주신 덕분에 힘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청룡영화상에 진출한 게 실감돼요.” 

-영화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면. 

정연지 감독: “영화 <안녕의 세계>는 주인공 영신의 친구 준희가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영신이 겪게 되는 일들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준희가 떠나고 난 뒤 영신이 느끼는 감정을 중심으로 표현하고자 했죠.” 

허지예 감독: “영화 <두 여자의 방>은 살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어질러진 집에서 살아가는 여성 작가 지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영의 집에 살고 있는 귀신 무명이 대신 청소를 해주고 있죠. 그러던 어느 날 지영의 엄마 준영이 집에 찾아오고 지영은 엄마가 살림을 대신 해줬다고 착각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정연지 감독: “제가 중학생 때 친구에 대해 실제로 느낀 감정이 출발점이었습니다. 학기 말 전학 온 친구가 있었지만 친해질 기회가 없었죠. 어느 날 그 친구가 쓴 글이 상을 받아 게시판에 게재됐어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있는 글이었는데요. 저는 그 친구의 솔직함이 인상 깊었어요. 이를 영화에 적용해 영신이가 글을 쓰는 장면에서 가장 솔직해 보이도록 연출했죠.” 

허지예 감독: “영감을 얻고 싶을 땐 버지니아 울프의 수필집인 『자기만의 방』을 꺼내봐요. 책에서는 여성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선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세기였던 당시는 여성이 자신의 재산을 소유하기 어려운 시대였죠. 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장벽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중 현재까지도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이 살림이라고 생각했고 우렁각시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어떨지 상상해 봤죠.”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바가 있나. 

정연지 감독: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외로움이 당연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허지예 감독: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려 하진 않았어요. 그저 여성 작가가 여성 서사를 쓰는 이야기죠. 여성이 꼭 여성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여성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여성의 서사로 풀어내는 일이 숙명처럼 느껴져요.” 

-연출 과정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정연지 감독: “영화 속 시대 배경은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낸 2010년대입니다. 당시와 어울리는 소품을 구하고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스태프들이 꽤나 고생했죠. 그럼에도 2010년대로 배경을 설정한 이유는 성인을 배우로 기용하기 위함이었어요. 성인이 밝지만은 않은 작품의 분위기를 보다 잘 표현해 줄 거라고 생각했죠. 이야기의 실제 배경과 배우의 연령이 잘 맞물렸다고 할 수 있겠네요.” 

허지예 감독: “여성들의 각기 다른 삶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무명의 의상을 서비스직 종사자처럼 보이도록 입혔어요. 또 귀신을 공포스러운 존재가 아닌 평범하고 귀여운 존재로 보이도록 연출했는데요. 영화에서 ‘요즘은 사람보다 귀신이 나아’라는 대사를 듣고 무명이 감동하는 장면이 그 예죠. 다만 무명은 음성이 아닌 자막을 통해 느낀 바를 표현합니다. 사람과 구분되는 귀신의 특징이자 문학적 장치로 기능하길 바랐어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정연지 감독: “저희는 촬영을 위해 서울뿐만 아니라 인천, 파주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어요. 밤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의 경우에는 인천에서 밤을 새우며 촬영했죠. 새벽에 포장마차에서 프로듀서님이 사주신 어묵을 먹고 차에서 쪽잠을 잤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허지예 감독: “후반 음악 작업을 하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귀신이 출연하는 장면의 음악에 많은 욕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제가 음악 감독님을 많이 괴롭혔죠. 특히 음식을 써는 소리나 물이 끓는 소리 등을 음악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결국 음악 감독님께서 본인이 살림하는 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음악에 담아 주셨죠.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엔딩 크레딧에도 해당 곡을 똑같이 사용했어요.” 

-다른 영화제들에 초청되기도 했는데. 

정연지 감독: “‘서울독립영화제’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초청받게 돼 기뻐요. 제가 인천 출신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생활 반경이 수도권 중심이거든요. 서울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제겐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허지예 감독: “작정하고 여성의 이야기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여성영화제에서 초대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성영화제에서 관객분들과 제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하게 느껴져요.” 

-차기작 계획이 있나. 

정연지 감독: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볼 계획입니다. 기존에는 드라마 장르의 성격이 강한 시나리오를 써왔다면 지금 준비하는 시나리오는 SF 요소를 살린 근미래 배경의 이야기예요.” 

허지예 감독: “사실 한두 달 전에 단편영화 한 편을 완성했어요. <정신머리 없는 여자>라는 작품인데요. 제가 운영하는 제작사에서 ‘다큰아씨들’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영화 모임을 하는 네 명의 여자가 아지트로 모인다’는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네 명의 감독이 각자 연출을 하는 프로젝트죠. 제 작품은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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