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막힘없이 10매 분량의 글을 뚝딱 완성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첫 문장을 쓰고 고치다가 또 지워버리는 날도 있습니다. 글이 영 안 잡히는 날은 3매의 아주 짧은 글도 한참을 붙잡고 앉아있죠. 그러나 매주가 바삐 돌아가는 중대신문에서는 ‘글이 잘 써지는 날’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마감기한까지 반드시 글을 써야 하므로 의자에 나를 묶어두고 꾸역꾸역 단어들을 토해냅니다. 

  중대신문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눈에 불을 켜고 학내 이슈를 찾아 보도면을 채워가야만 합니다. 화요일 취재원들이 인터뷰를 거절해도 재차 부탁하거나 다른 취재원을 찾아내어 반드시 답을 얻어내죠. 반드시 내가 맡은 기사를 마감하고 지면을 완성해야 합니다.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당연히 해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다음 주는 내가 조금 더 잠을 줄이면, 기사를 많이 맡으면, 피드백을 빠르게 하면 이번 주 발행보다 원활하게 끝낼 것만 같았습니다. 

  중대신문 애독자라면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획했던 기사가 엎어진 적이 있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했습니다. 월요일에 잠에 들어버린 것, 컨택리스트를 구체화하지 못한 것, 자투리 시간에 취재 요청을 보내지 못한 것, 현장취재를 금요일로 미룬 것.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모두 잘못처럼 느껴졌고, 꼬리를 무는 잘못을 하나씩 곱씹어 가며 반성 아닌 반성을 했습니다. 

  한 번의 실패는 나의 무능으로 해석되고 곧 미움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주위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완벽한 성과를 내려 하지만 한 점의 티끌 없는 일의 성취는 애초에 불가능하죠. 작은 실수에 덜컥 겁을 먹고 남보다 나를 먼저 질타하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점이 있기에 실수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더군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저 또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8번의 발행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의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도 조금 멀리 떨어져 보니 상황이 불가피했던 것뿐이었죠. 그간 중대신문이 우여곡절을 겪고도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닌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실수와 상황을 분리해서 받아들였을 때 과거에 매몰된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해결책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기 비난은 ‘부족한 나’를 마주하지 못하며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타인으로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 나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과도한 자기 방어 기제에서 비롯되죠.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저도 외면했던 제 문제를 가감 없이 마주하려 합니다. 솔직한 모습으로 앞으로의 수첩을 적어 내려가 보겠습니다.


김도희 대학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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