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에 대한 정의가 분분하다. '자본에서의 독립'에 중점을 두는 '저예산 영화'의 의미외에 감독이 생각하는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저예산 영화=독립영화'는 아니다. 대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독립 영화 제작 방식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 대기업의 속성은 적은 자본이라는 투자효율적인 측면과 기존 충무로의 체제의 배타적 여건을 제치고 자신들의 영토확장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의 독립이란 영화제작에 있어 전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사고만이 깃들어져 있어야 한다.

△독립영화인으로서 영화제작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주로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학생이나 젊은층 등에 국한되어 있다. 독립영화의 실험성이라는 측면 때문인 것 같지만 문제는 이들의 무모성이다. 대부분의 젊은 친구들이 영화를 만드는 기본 기술, 즉 조명이나 촬영, 편집 등의 능력부족은 인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시나리오 하나만으로 덤비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연출지망을 선택하는 실정에서 독립영화의 발전은 어렵다.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검열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독립영화의 경우 제재가 더욱 심한데

한마디로 독립영화는 '제 멋대로 만드는 영화'이다. 제도권의 눈치를 보고 만든다면 이미 독립영화가 아니다. 1차적인 자기검열이 없기 때문에 제도권은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막말로 '개같은 세상'이라고 떠드는 데 좋아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주류에 반기를 들고 젊은 정신으로 시작하자'는 독립영화인들의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가 일부 젊은이 사이에서 벌써 타락하는 권위의 상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나의 흐름이다. 선댄스 영화제가 덩치가 커졌다고 그런 비난을 하는 것을 옳지 않다. 처음 선댄스 영화제의 취지에서 벗어나 점점 주류화된다고 해서 선댄스 영화제의 의의를 없던 걸로 칠 수는 없다. 나름대로 선댄스 영화제는 제 역할을 다해왔고 거기에 반하는 또 다른 마이너리티가 생겼을 뿐이다. 이런 것들이 진정한 마이너리티성 아닌가.

△최근 주류영화감독들의 '저예산 영화찍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독립영화 제작방식으로 상업영화를 만들어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겨냥한다는 의도로 해석되는데 이런 편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제작에서 돈의 거품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일단 찬성한다. 독립영화도 상업성이 있다고 본다. 자본에 좌지우지되는 상업성이 아니라 독립영화도 내용과 형식에 따라 얼마든지 관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류감독들의 이런 편승을 논하기 전에 독립영화인들도 새로운 활로의 모색이 필요하다.

△새 작품 '김수영-sex'는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한국의 경우 기존의 독립영화를 보아도 성문제를 다룬 작품이 거의 전무후무할 뿐만 아니라 성의 상품화란 측면에서 배척해온 걸로 아는데

맞다. 지금은 온통 '성'이 판을 친다. 나는 이열치열(以熱治熱) 기법을 쓴다. 섹스가 문제가 된다면 섹스 안에서 문제를 돌파하고자 한다. 일부에서 흥행을 위해 섹스를 다룬 게 아니냐고들 한다. 성이 주제가 아님에도 섹스를 사용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상업적인 의도로 만들진 않았다.

<김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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