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곳, 네버랜드를 아시나요? 책 『트렌드 코리아 2023』의 저자 이준영 교수(상명대 경제금융학부)는 올해의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꼽았습니다. ‘어른 아이’가 많아진 요즘 네버랜드 신드롬은 하나의 보편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이번 주 문화부는 네버랜드 신드롬의 원인과 영향 그리고 앞으로의 키덜트 문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이가 되고 싶은 요즘 우리의 심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함께 살펴보시죠. 진수민 기자 susky@cauon.net

사진출처 디즈니
사진출처 디즈니

 

“사회적으로 점점 고령화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어린아이에 머무는 미숙한 어른’보다 ‘젊음을 유지하는 어른’으로 나아간다면 네버랜드 신드롬이 사회의 활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민영 교육컨설팅기업 TND Partners 대표

“어렸을 적 제가 가장 좋아했던 헬로키티를 보기 위해 팝업 매장을 찾아왔어요.” 9일 헬로키티 팝업 매장을 찾은 강소은씨(21)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화점에 입점한 짱구 팝업 매장부터 호텔에 마련된 포켓몬스터 테마 객실까지 캐릭터와 결합한 상품의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큰 사랑을 받는 만화 속 캐릭터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네버랜드 신드롬’이 있다.

  ‘어른 아이’의 확산 
  네버랜드 신드롬이란 나이보다 젊게 사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는 풍조를 의미한다. 네버랜드는 소설 『피터팬』(제임스 매슈 배리 씀) 속 주인공 피터팬과 그 친구들이 사는 가상의 나라로, 영원히 나이가 들지 않는 장소다. 『피터팬』에서 피터팬은 끝까지 네버랜드를 지켜 아이로 남지만 피터팬의 초대로 네버랜드에 오게 된 웬디는 끝내 어른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네버랜드에서의 소중했던 시간만은 어른이 된 웬디의 마음속에 오롯이 남았다. 동화 속 웬디처럼 몸은 현실에 있으나 내면에는 동심 가득한 세상이 있는 키덜트의 모습에서 우리는 ‘네버랜드 신드롬’을 엿볼 수 있다.

  키드(kid)와 어덜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는 어른이 됐음에도 여전히 어렸을 적의 감성을 간직한 성인들을 지칭한다. 소수의 마니아층으로 이뤄졌던 키덜트 문화는 점차 범위를 확장하면서 현재의 네버랜드 신드롬까지 이어졌다. 네버랜드 신드롬 이전에는 피터팬 증후군이 그 자리를 대신했었다. 피터팬 증후군은 성인이 되어서도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가 어른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심리다.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던 기존의 피터팬 증후군과 달리 네버랜드 신드롬은 가치중립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이준영 교수(상명대 경제금융학부)는 과거에 비해 자유로워진 사회 분위기로 인해 ‘네버랜드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피터팬 증후군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성인도 신선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어요. 아이처럼 자유로운 삶이 부끄럽지 않다는 인식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네버랜드 신드롬이라는 가치중립적 용어가 필요해졌죠.” 이은희 교수(인하대 소비자학과)는 이러한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으로 뉴미디어의 발달을 꼽았다. “같은 취미를 지닌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 결과 더 편안하고 당당하게, 자기 방식대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추억을 활용하는 기업들 
  네버랜드 신드롬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돌아감’ ▲더 나이 들지 않으려는 ‘머무름’ ▲아이처럼 재미있게 놀고싶어 하는 ‘놂’의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근래에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미술작품·영화·문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표출되고 있다. 최근 팝아트를 포함한 예술계에선 귀여움을 부각하는 시각 자극이 인기다. 일본 팝아트 2세대 대표 작가인 마유카 야마모토 작가는 큰 눈망울을 한 사랑스러운 아이를 작품에 등장시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올해 극장가에서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누적 관객 수 약 476만 명을 기록하며 기성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기성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만화책 『슬램덩크』(이노우에 타케히코 씀)의 극장판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그들의 학창 시절 추억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9일 서울특별시에 위치한 닌텐도와 헬로키티 팝업 매장은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평일임에도 방문객 대부분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었다. 특히 닌텐도 팝업 매장은 개장 전 실시한 사전 예약이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9일 서울특별시에 위치한 닌텐도와 헬로키티 팝업 매장은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평일임에도 방문객 대부분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었다. 특히 닌텐도 팝업 매장은 개장 전 실시한 사전 예약이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캐릭터 팝업 매장을 기획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문화부는 9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헬로키티 팝업 매장과 아이파크몰 용산점의 닌텐도 팝업 매장을 찾아 방문객을 직접 만나봤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굿즈 판매 매장에는 헬로키티 볼펜·파우치·카드 지갑 등 다양한 품목의 상품을 구경하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매장에 방문한 민예빈씨(24)는 귀여움과 실용성을 모두 잡은 팝업 매장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단순히 인형에 국한되지 않고 실용성 높은 제품에 귀여운 캐릭터가 추가되니 많은 사람이 찾게 된 것 같아요.” 아이파크몰 용산점의 닌텐도 팝업 매장에서도 다양한 테마의 닌텐도 굿즈 상품을 볼 수 있었다. 문을 열고 팝업 매장이 있는 실내로 들어가자 상기된 얼굴로 긴 줄을 이룬 ‘어른들’이 눈에 띄었다. 이정민씨(24)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추억을 가지고 매장에 방문했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닌텐도를 즐기던 세대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방문객의 대부분이 어른인 것 아닐까요. 팝업 매장에서 판매하는 굿즈의 가격이 상당한 것도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네버랜드로 향하는 사람들 
  최근 네버랜드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인간 수명 연장에 따른 정형화된 생애과정의 소멸을 들 수 있다. 이민영 교육컨설팅기업 TND Partners 대표는 사회 주류층의 연령이 높아지는 현상에 주목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중위연령이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과거 고연령으로 여기던 사람이 이제는 고연령이 아니죠. 나이보다 어리게 살려는 것이라기보다 실제 사회적 나이가 어려졌어요.”

  이은희 교수는 최근 소비자의 상품 선택 기준이 다변화된 것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았다. “요즘 소비자는 상품의 품질만을 따지지 않습니다. 캐릭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등을 통해 부가적인 경험적 만족이 충족되길 바라는 경향이 있어요.”

  소비행태의 변화를 넘어 사회·경제 전반의 변화에 따라 네버랜드 신드롬이 생겨났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준영 교수는 경제 불황 등 불안정한 사회 현실에 주목했다. “경제가 어려우면 가벼운 소비를 추구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때문에 불황기에는 만화 캐릭터 등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되죠.” 이은희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각박해진 현실도 한몫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로 깊은 인간관계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과 연결되긴 하지만 정작 마음을 나누는 관계는 부족하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키덜트 제품을 찾게 되는 거예요.”

  최지연 세종플랫폼 대표는 현실과 자기평가의 불일치가 키덜트 제품의 소비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삶은 만족스럽지 않은데 자신이 그보다 높은 자존감을 추구하는 경우 사람들은 키덜트 제품을 찾기 쉽습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부정적으로 하는 대신 현실도피를 목적으로 키덜트 제품을 찾는 거죠.”

  네버랜드에 안주하지 않도록 
  동심의 세계가 마냥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다수의 전문가는 네버랜드 신드롬에도 우려되는 지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해나 교수(성균관대 사회학과)는 젊음을 얻기 위해 소비하는 문화가 또 다른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젊음이 소비할 수 있는 객체가 됐습니다. 젊음을 소비하기 위해 소비문화의 형태가 더 다양해질 텐데 이 과정에서 소비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할 것입니다. 심리적 박탈감이나 고립감도 작용하게 되겠죠. 젊음을 단지 동경의 대상이 아닌 추앙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이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 거예요.”

  이은희 교수는 지나친 안주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언급했다. “네버랜드 신드롬이 생활의 윤활유로 작용한다면 긍정적이죠. 그러나 키덜트 문화를 즐기던 사람이 어린 시절에 안주해 발달 단계상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됩니다.” 이준영 교수는 즐길 수 있는 지점과 경계해야 할 지점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성숙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가져올 부작용을 충분히 생각해야 해요. 지양해야 할 부분을 유념하되 네버랜드 신드롬의 긍정적 측면을 충분히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민영 대표 또한 네버랜드 신드롬의 긍정적인 면을 활용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사회적으로 점점 고령화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어린아이에 머무는 미숙한 어른’보다 ‘젊음을 유지하는 어른’으로 나아간다면 네버랜드 신드롬이 사회의 활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네버랜드 신드롬은 보편적인 하위문화로서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최지연 대표는 네버랜드 신드롬에 대한 기업의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귀여운 것’을 보는 것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저출산이 지속되면서 본능 실현의 기회가 감소했어요. 이에 따라 키덜트 문화에 대한 소비 동기는 자연스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므로 네버랜드 신드롬을 보편적인 하위문화로 인지하고 콘텐츠 분야에서의 전략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때입니다.”

  어른이 된 우리 앞의 다양한 장벽은 종종 자유로운 상상조차 어렵게 만든다. “나는 건 정말 쉬워, 즐거운 일을 상상해봐!” 우리 모두 잠시 네버랜드로 떠나 즐거운 일을 상상해보자. 너무 오래 머무르지만 않는다면, 분명 네버랜드는 우리 삶의 아름다운 도피처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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