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사회를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걸까. 기자는 생각합니다. 나 하나 살기도 바쁘고 힘든데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에 의문이 생길 때가 있죠. 그러나 이 심오한 의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됐습니다. 

  기자는 초등학교 2학년을 도시의 한 대형병원에서 지냈습니다. 편의점도 버스 타고 20분은 가야 하는 시골에서 자란 기자에게 대형병원은 매우 놀라운 곳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층 버튼도 홀짝으로 나눠져 있어 덕분에 홀수와 짝수를 배울 수 있었죠. 

  작은 키로 우러러본 병원 내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들이 기억납니다. 궁금증이 많던 어린 시절의 기자는 매 층을 놀러 다녔는데요. 노년층 환자가 많던 11층은 조용했습니다. 휴게실에서 통화하거나 대화하는 젊은 보호자들도 보였지만 그들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죠. 9층에서는 중년층의 여성들이 항상 따스하게 기자를 맞이해줬는데요. 7층은 쇠약한 동갑내기 혹은 유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7층에서 만난 손에 링거가 꽂힌 동갑 친구와 놀았던 기억이 나는데요. 친구가 그만 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다신 만나지 못했죠.  

  결국 어린 시절의 기자가 편안하게 할 수 있던 놀이는 글쓰기와 사람 구경이었고 즐거웠습니다. 뒤늦은 저녁만 돼도 각 병동의 휴게실과 불이 꺼지지 않는 응급실 문 앞에서 사람을 구경했습니다. 고통으로 그을진 그리움과 눈물로 힘주어 내뱉는 사람의 그 말들이 당시에는 꽤 어려운 용어였는데요. 9살이었던 기자는 이해할 수 없어 그저 쳐다보기만 했죠. 그러나 기자가 사회부 기사를 쓰기 위해 전문가를 인터뷰하고 세상의 지식을 배워가니 아리송하기만 했던 그들의 행동이 하나둘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이끌고 지켜내기에 형용할 수 없어 북받쳐 오르는 사랑이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지켜봐야만 한다는 무력감에 느끼는 넘치는 사랑. 자녀를 병실의 침대에 재우며 정작 환자인 부모는 의자에서 잠을 청하는 끝없는 사랑. 건강하다고 말하면서도 사망보험금을 계산하며 세상에 남을 이들의 경제적 여건을 걱정하기에 벅차오르는 사랑.  

  차마 정의 내릴 수 없는 사랑을 기자 또한 받아 온 것이었죠. 이는 사회의 법칙인 걸까요? 살아있는 모든 이가 지금도 앞으로도 그 무모한 사랑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기자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도록 글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기자는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지닌 사랑을 더 알아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는데요.

  기자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날이 오겠죠. 그때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더 좋은 사회에 살다가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기에 기자는 오늘도 펜을 듭니다. 그리고 넘치고 끝이 없어 벅차오르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 더 좋은 사회를 글로 담아봅니다.

 

 

 

 

 

 

 

 

이주희 사회부 정기자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