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난 학기 제 칼럼을 펼쳐 봤습니다. 어떤 이야기로 이 지면을 채워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혀서요. 읽는 내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오더군요.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왜 그리 망설이고 헤맸는지. 그럼에도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원에게 용기 내 다가가 보겠다는 당찬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그 다짐 덕분에 저는 대학보도부에서의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친 후 이제는 문화부에 몸담고 있습니다. 문화부에서의 지난 세 달간 저는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이분들을 뵙기 위해서는 우선 메일을 통해 정중히 인사드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메일을 드리기 전 취재원이 연구한 논문을 열심히 읽어보기도 하고, 메일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 고민을 거듭하며 문장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죠. 


  물론 가끔 게릴라 인터뷰가 필요한 순간이 오는데요.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기사에 담기 위해서는 기자가 직접 발로 뛰어야 합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시간이 길어져서일까요. 언제부터인지 이곳저곳 취재원을 찾아다니는 일이 익숙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메일을 통한 인터뷰 요청에 익숙해져 게릴라 인터뷰를 그저 귀찮은 일로 치부한 날도 있었죠.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현장에서 학생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니 재밌더군요. 오랜만에 사람의 눈을 보며 소통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물론 학교에는 여전히 제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이들로 가득했는데요. 이렇게 실패하나 싶다가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말로 이룰 수 없습니다. 고백하자면 문화부에 지원할 당시만 하더라도 매일같이 저를 주눅 들게 한 게릴라 인터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화부에 온 후 정신과 의사·사진작가·뮤지컬 감독·학생 등 여러 직군의 사람을 만나보니 대면 인터뷰의 매력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만나서 그들과 나눈 이야기는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았죠. 그 대화 속에는 저의 미소가, 그리고 그들의 미소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는 메일과 전화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죠.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것이 본래 기자의 일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타지역 공사장까지 찾아가는 동료의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 사거리 한복판에서 아이 엄마와 신나게 이야기 나누는 동료를 마주친 적도 있는데요.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흐뭇해져 한참을 지켜봤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억들이 하나둘씩 모여 저는 ‘사람을 만나는 기자’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글 속에 담기지 않는 그들의 표정이 좋아서요. 메일을 통해 인사드리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사람과 얼굴을 맞대는 일에서 멀어지지 말자는 다짐을 해봅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