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신뢰에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조롱과 재미를 담은 한국 사회의 최신 밈입니다. 각종 언론사와 기업들은 발 빠르게 해당 밈을 활용했는데요.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았죠. 웃고 넘기기 좋지만 마냥 웃어 넘길 수만도 없는 밈, 우리는 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번 주 문화부는 현대사회의 밈이 지니는 두 얼굴을 알아봤습니다. 밈의 정의부터, 건강한 소통을 위해 우리가 인지해야 할 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보시죠.진수민 기자 susky@cauon.net



“최근 우리는 수많은 생각과 말에 밈을 포함하곤 하죠. 때문에 우리 생활 속에 비하의 도구나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밈이 뒤섞여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수시로 살펴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신종천 교수(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사기 혐의로 입건된 전청조씨의 말투는 개인을 넘어 기업 마케팅, TV 프로그램 등에도 사용되며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았다.사진출처 한국경제
사기 혐의로 입건된 전청조씨의 말투는 개인을 넘어 기업 마케팅, TV 프로그램 등에도 사용되며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았다.사진출처 한국경제

 



“너 T야?”, “멋지다 연진아”, “홍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뉴진스의 하입보이요.”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어본 말들일 것이다. 유명한 드라마의 명대사, 유튜브 영상 속 유머 등은 곧잘 ‘밈(meme)’이 돼 온·오프라인 상에서 널리 확산하곤 한다. 형태나 유래는 각양각색이지만 밈들은 이제 하나의 소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밈은 어떻게 우리 삶 속에 녹아들었을까. 밈의 특징과 그 이면을 알아보자. 


  언어가 된 우리의 문화적 유전자 

  밈이란 본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으로 문화 요소를 모방하여 전파하는 문화적 유전자를 이르는 용어다. 장경현 교수(조선대 국어교육과)는 밈이 언어 현상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형태의 밈은 다양한 형식의 소통에 기여해요. 언어는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으로써 체계를 갖춘 것을 이르는 개념이기 때문에 밈 또한 언어 현상의 일부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은 밈의 생산과 확산을 촉진했다. 박광길 강사(교양대학)는 인터넷 밈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가지는 특성에 주목했다. “밈은 본래 인터넷 등 통신 매체를 고려하지 않은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밈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발생 주기나 확산 속도가 빨라졌어요.” 장경현 교수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밈의 형태가 다채로워졌다고 말했다. “인터넷 밈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영상·소리 등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죠.” 


  밈은 언어로서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장경현 교수는 밈의 상호텍스트성을 강조했다. “밈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워요. 반드시 특정 사건과 연관 지어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하죠. 이를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하는데요. 특정 사건에서 연상되는 분위기나 이미지를 가지고 유희를 즐기는 것이 밈 발화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 밈이 지닌 상호텍스트성이 사회 구성원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해준다고 말했다. “‘밈은 설명하면 효력을 잃는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밈을 사용하는 사회 구성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조소나 비판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유머가 개입되면서 밈은 건전한 사회비판의 기능을 갖게 된 것이죠.” 


  밈의 또 다른 언어적 특징으로는 변용성이 있다. 기존의 밈을 다양하게 변형하거나 그 사용 영역을 넓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신종천 교수(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는 밈의 변형을 밈이 인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바라봤다. “유전자는 자기복제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생명체를 찾아 변이를 거쳐 자연환경에 적응합니다. 문화 유전자인 밈 또한 자기복제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적절한 변이를 거쳐 인간 환경에 적응해야 하죠.” 양명희 교수(국어국문학과)는 밈이 모방·변용·확산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했다. “밈은 이용자 개개인의 아이디어와 반응에 따라 내용이 결정되고 변형됩니다. 그 핵심은 시대 문화의 반영과 더불어 이용자의 개별적 가치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죠. 이는 사회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기반으로 작용해요.” 


  언어로 기능하는 밈은 다양한 이점을 지닌다. 박광길 강사는 새로운 표현수단인 밈이 다채로운 표현에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밈은 이전에 없었던 표현 수단이라는 점에서 풍부한 표현과 사고의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됩니다. 이는 언어로서 밈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죠.” 양명희 교수는 사회·문화적 장점에 주목했다. “밈은 사회와 문화를 풍자하는 긍정적 기능을 지니고 있어요. 따라서 사회에서 공유되는 밈을 분석함으로써 해당 언어공동체의 사회·문화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죠.” 


  밈이 만드는 우리만의 리그

  하지만 밈의 상호텍스트성은 소통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장경현 교수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밈의 특성이 언어 장벽을 더 공고히 한다고 설명했다. “소통 측면에서 밈은 신조어보다 더 심각한 언어 장벽을 형성했습니다. 설명과 벌레를 뜻하는 한자 충(蟲)이 결합한 신조어 ‘설명충’만 봐도 그 구성요소를 분석해 보면 어느 정도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밈은 그렇지 않죠. 너무 흔한 표현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어요. 밈의 유래를 알지 못하면 해석할 방법이 없죠. 구체적인 의미가 담기지 않은 채로 단순한 유희로 사용할 때가 많기 때문에 집단 간의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박광길 강사는 특히 세대 내 장벽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전에 많이 제기됐던 의사소통 문제가 세대 간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라면 밈에 대해 가장 우려해야 하는 부분은 세대 내 의사소통의 어려움입니다. 근래의 밈은 생성과 활용의 주기가 매우 짧아요. 인터넷상에서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서로 다른 밈을 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이 단절될 수 있죠.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밈이라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용자의 의도와 다르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나 장경현 교수는 밈이 뉴미디어 시대 속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앞으로 집단 간의 장벽은 점점 옅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최근 사기 혐의로 화제가 된 전청조씨의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되자마자 언론은 앞다투어 ‘I am’ ‘Ok...그럼 Next time에’ 등이 밈이 될 것으로 예측했어요.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퍼뜨렸죠. 사람들의 관심사에 민감한 언론이 밈에 주목한다는 것은 그만큼 밈 자체가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밈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밈을 건강한 놀이문화로 또 자유로운 비판 문화로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다채로움, 그 이면에는  

  밈의 변용성 또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개구리 캐릭터 ‘페페’가 있다. 페페는 2005년 맷 퓨리의 만화 ‘보이스 클럽(Boy’s Club)’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다양한 표정을 띠고 있어 인터넷상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밈으로 유행했다. 그러나 2016년 전후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포챈(4chan)을 중심으로 페페가 반유대주의·성차별주의·인종차별주의적 게시물에 등장하면서 페페는 백인우월주의·반여성주의를 상징하는 혐오의 밈으로 전락했다. 단순 감정 표현의 밈이었던 페페가 재미를 넘어 미국 극우세력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2005년 맷 퓨리의 만화 ‘보이스 클럽(Boy’s Club)’ 속 페페는 독자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캐릭터였다. 사진출처 『Boy’s Club』(맷 퓨리 씀)
2005년 맷 퓨리의 만화 ‘보이스 클럽(Boy’s Club)’ 속 페페는 독자에게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캐릭터였다. 사진출처 『Boy’s Club』(맷 퓨리 씀)

 


  이러한 특징으로 혐오의 밈은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례로 2016년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엑스(전 트위터)에 자신과 극우세력의 상징인 페페를 합성한 사진을 게시했다. 포챈이 만든 혐오의 밈에 호감을 표시하며 밈 확산을 부추긴 것이다. 윤자호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연구위원은 정치인이 밈을 이용해 여론을 호도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전파력이 강한 밈은 논의의 장을 축소할 위험이 있습니다. 밈을 인기몰이용으로 쓰는 데 치중하면서 제도적 개선 방안 논의에 소홀해질 수 있죠. 그러나 밈을 통해 인지도를 얻은 정치인이 이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밈의 사용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기업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밈을 사용하고 있다. 일명 ‘전청조 밈’은 일반 대중을 넘어 기업들도 상업적 용도로 적극 활용 중이다. 전자상거래업체 위메프는 최근 ‘I am 특가에요~’ ‘Next time은 없어요~!’등의 문구로 제품을 홍보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명희 교수는 정계·재계에서의 밈은 홍보와 마케팅, 여론 형성 등의 목적으로 쓰인다고 전했다. “정치인들은 한 번이라도 더 자신의 정치 기조와 입장을 국민에게 알려야 합니다. 기업 또한 자신의 물건을 소비자가 한 번 더 보도록 하기 위해 인터넷 밈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동기를 갖죠. 대중은 재밌다고 느껴지기만 한다면 그것이 사기꾼의 말투라 할지라고 거리낌 없이 밈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장경현 교수는 가볍게 즐기는 밈이 가져올 부작용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밈을 부담없이 가볍게 즐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농담을 가볍게 남발하다 보면 그 속에 담긴 문제점과 다른 가능성을 망각하거나 무시할 위험이 있죠.” 


  혐오를 위해 소비되는 밈 

  누군가를 조롱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밈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파급력이 컸던 인터넷 밈 중 하나로 ‘누칼협’이 꼽힌다. ‘누칼협’은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불만을 제기하는 글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문제라고 조롱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이러한 냉소가 담긴 ‘누칼협’은 10·29 이태원 참사를 다루는 언론 보도 댓글에도 등장해 논란이 됐다.  


  윤자호 연구위원은 ‘누칼협’ 등 일부 밈은 사회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한국 사회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각자도생의 논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시간이 다른 나라에 비해 부족했죠. 때문에 사회적 위험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곤 했어요. 이러한 문제가 현재까지 지속되다 보니 이제 사람들은 사회구조를 비판할 힘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서찬석 교수(사회학과)는 이러한 밈의 무분별한 사용이 복잡한 사회현상을 단편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밈이 복잡한 사태나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사회현상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일부 밈은 복잡한 사회현상을 대중이 지나치게 단순화해 대응하도록 유도하죠.” 


  비판적 수용이 필요해 

  전문가들은 뉴미디어를 만나 쉽고 빠른 전파가 가능해진 밈에 대해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찬석 교수는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내포된 밈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밈을 하나의 정치적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오늘날 정치의 새로운 측면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특정한 밈이 지닐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를 선택적으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해요. 시민들은 특정 밈이 지니는 혐오의 정서를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하죠.”  신종천 교수는 밈 수용자가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메타인지는 인간이 자기 생각과 믿음 등을 한 단계 위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며 수정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최근 우리는 수많은 생각과 말에 밈을 포함하곤 하죠. 때문에 우리 생활 속에 비하의 도구나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밈이 뒤섞여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수시로 살펴보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밈을 건강하게 소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용하는 밈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사회적 가치를 지닌 밈이라면 비판적 수용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밈이 담은 의미가 건강한 사회 비판인지 무분별한 혐오인지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보자. 이는 뉴미디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생존비법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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