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교수(사회복지대학원)는 “현대 사회는 녹색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의제화하기 위해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디지털 시대 속 불안정성 증가 
역진적 선별주의 복지 벗어나야

복합 위기 대응 필요성 대두돼 
“녹색복지국가로의 전환 필요”

올해로 개소 10주년을 맞은 독일유럽연구센터는 9월 5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연속강연회를 진행했다. 강연들은 각각 ▲경쟁교육의 대전환 ▲청년의 정치참여와 한국정치 개혁 ▲디지털자본주의 ▲한국의 불평등 ▲글로벌 생태 위기 등의 주제를 다뤘다. 독일유럽연구센터는 각 강연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와 국회의원을 함께 초청해 학문과 정치의 융합을 꾀했다.

  강연회는 교수의 강연을 듣고 정치인과의 토론이 진행된 후 참가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해당 강연에 참여한 전문가와 정치인들은 한국 사회에 도사리고 있는 위기에 대해 심도 있는 담론을 펼쳤다. 김누리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독일어문학전공 교수)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짚어보고 사회 개혁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해당 강연회를 개최했다”며 “다소 떨어져 있던 학문과 정치 의제가 한데 모여 논의될 수 있도록 강연과 토론을 혼합한 형식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복지국가의 도전 과제는 
  10월 31일에는 ‘인류세 시대의 복지비전과 복지정치’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다. 해당 강연은 이창곤 교수(사회복지대학원)가 발제를 맡았고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전주시병)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해당 강연에서는 난제가 산적한 복합 위기의 시대 속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논의됐다. 오늘날 복지국가는 새로운 위기를 직면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불평등 심화와 생태계 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 등 각종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복합 위기의 상황은 일반적인 대처법으로 극복할 수 없기에 새로운 대응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창곤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세 가지 도전 과제로 ▲디지털 다변화 ▲사회적 불평등 ▲생태 위기를 꼽았다. 이창곤 교수는 “위기를 극복할 대응책을 현실화시켜 삶을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며 위기극복전략으로서 복지정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생겨남과 동시에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위험 요소 또한 증가한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노동 시장에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면서 일자리의 자동화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디지털 플랫폼에서 노동자들은 회사에 종속돼 있지만 기업 복지는 제공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인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총칭)로 전락했다. 이러한 디지털 경제 속 노동의 다층화 현상을 이창곤 교수는 디지털 다변화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은 팬데믹 시대의 디지털 전환과 맞물리며 가속화됐다.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기득권층은 재난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재난은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복지국가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형평성을 이상적 가치로 삼기에 현대의 심화하는 불평등은 큰 위기로 여겨진다. 이창곤 교수는 “한국의 복지는 작은 복지국가와 역진적 선별주의라는 특성이 있다”며 “전자는 복지 지출의 결핍을, 후자는 복지 사각지대로 인해 취약계층이 아닌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모순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 상실이라는 두 가지 위기를 통틀어 가리키는 생태 위기는 대전환 시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지질학자들은 생태 위기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인류세’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인류세의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기후변화다. 최근 발생한 호주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초대형 산불, 유럽의 홍수 등 잇따른 기상 재난은 기후변화의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다. 이창곤 교수는 “생물다양성 상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의제”라며 “기후 위기로 인한 가뭄 등의 재해로 생물 개체군 자체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녹색복지국가를 그려나갈 때 
  이창곤 교수는 이러한 복합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녹색복지국가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녹색복지국가는 급변하는 경제사회질서 속에서 국민들의 기초적인 삶을 보장하는 한편 소수의 성장보다 모두의 번영을 이룩하고 모든 생명의 공존을 지향하는 국가다. 녹색복지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선 인간 중심주의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을 자연의 생태계 구성원 중 일부로 여기는 호혜적 공존으로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탄소 중립·에너지 전환·그린 뉴딜 등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 상실에 대응하는 정책을 구체화하고 경제사회체제를 탈탄소 사회로 전환함으로써 우리는 녹색복지국가를 건설해 나갈 수 있다. 이창곤 교수는 “복지국가가 생태 위기라는 인류 생존의 근원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녹색전환을 지향할 때 녹색복지국가로 재구조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곤 교수는 녹색복지국가로 향하는 첫 발걸음으로서 담론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복지국가로서의 위기대응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인식해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창곤 교수는 “우리가 현대의 복합 위기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며 “시민들이 의견을 모아 공동의 목표를 정립하고 공공에서 이를 정책적으로 구체화할 때 비로소 위기를 타개할 해답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누리 교수는 “현재 대학은 학생들의 비판 의식이 결여돼 완전히 탈정치화된 공간으로 전락했다”며 “학생들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 구조를 통찰하는 안목을 갖고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성주 의원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깊게 들여다보고 성찰할 필요성이 있다”며 “학생들이 정보를 판별하고 본질을 이해하는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강연에 참석한 소감을 나눴다. 박선욱 학생(한양대 국어교육과)은 “녹색복지국가라는 개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복지의 개념을 단순히 경제적인 원조뿐만 아니라 디지털·생태·불평등 위기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 능력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김지아 학생(물리학과 1)은 “강연에서 언급했듯이 요즘 사회는 담론이 부족한 사회라고 생각한다”며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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