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최예나 기자
사진 최예나 기자

지난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이어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의 프로선수들은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보여주며 활약했습니다. 빛나는 프로 무대 뒤편에는 경기장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학생선수들이 있죠. 학생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전념하며 학업, 또래 관계 등 학창 생활의 많은 요소를 포기하는데요. 그럼에도 프로 진출은 마치 바늘구멍과도 같아 매년 2천여 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중도탈락합니다. 맨손으로 사회에 내던져진 많은 학생선수들은 학업·진로·정체성 등 새로운 고민을 맞닥뜨리며 방황하죠. 이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학생선수를 운동선수가 아닌 하나의 학생으로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봤습니다. 김도희 기자 dogml@cauon.net

학생선수, 두 마리 토끼 잡아야 
“대학 생활서 학업에 어려움 느껴” 
 
학업의 중요도 높인 대학 체육 
현장도 학업 병행 필요성 체감 

“운동실적만이 진학을 판가름” 
중도탈락자 4년 새 2배 이상 증가 
 
학업 보장·정신건강 관리 필요 
스포츠클럽 등 구조적 개혁 요구돼 

학생선수들은 프로선수란 목표를 갖고 운동에 열중하지만 모든 학생선수가 프로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선수가 되지 못하고 중도탈락자가 되는 경우 급변하는 생활 속에서 학생선수가 겪는 학교생활과 진로에 대한 어려움은 상당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스포츠 구조 속에서 학생선수들은 학생으로서 보호받고 있을까. 엘리트 스포츠의 현실을 통해 이들이 겪을 수 있는 문제를 알아봤다. 

  학업과 운동의 저울 위 학생선수 
  중앙대는 농구·야구·축구의 단체 종목과 배드민턴·볼링·사격 등의 개인 종목에서 ‘실기/실적(특기형)’ 전형을 운영해 체육특기생을 수용하고 있다.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 학생선수는 재학 과정에서 학생의 의무인 학업과 선수의 의무인 운동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운동을 주로 해왔던 학생선수는 학업과 훈련의 병행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성주 야구부 선수(생활·레저스포츠전공 2)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운동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대학에 와서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김기훈 축구부 선수(생활·레저스포츠전공 3)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다”며 “축구를 배우면서 학생으로서 수업도 들어야 하다 보니 학업 수행도를 높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엘리트 스포츠의 특성상 학생선수들은 학업 성적보다 당장의 경기 우승 실적을 우선시했고 이는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문제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임용석 교수(충북대 체육교육과)는  “학생선수는 학업 성적과 별개로 운동 실적만으로 대학 입학이 결정되기에 학생선수가 상대적으로 학업을 등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문제가 대두되자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는 2012년 대학스포츠 운영 규정 마련을 추진했다. 「KUSF 대학스포츠 운영 규정」은 학생선수의 수업·출석·성적 등을 규정해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과 경기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그중 ‘C0 룰’이라고도 불리는 제25조(학점관리와 불이익처분)는 학생선수의 직전 2개 학기 학점 평균이 C0 미만일 경우 KUSF에서 주관한 대회에 출전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에 조현철 교수(우석대 체육학과)는 “제도는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며 “C0 룰 등의 제도가 학생선수의 학업 참여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김성주 선수는 “1학년 때 학업보다 야구를 우선순위에 뒀기에 C0 학점 미만을 받아 경기에 못 뛴 적이 있다”며 “모든 학생선수가 프로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학업의 중요성을 느낀 현재는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학업에 대한 필요성에 공감하며 학업 병행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밝혔다. 임용석 교수는 “체육특기자 제도 속 실제 운동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선수들의 비율이 매우 적다”며 “학생선수가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고정식 야구부 감독은 “체육특기생은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다양한 진로로 진출할 기회를 마련해야 하므로 학교생활에도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해종 축구부 감독도 “모든 학생선수가 프로선수로 데뷔하지 못하며 지도자 자격증 등 다양한 진로를 모색한다”며 “이 경우를 대비해 학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선수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학업병행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선수들은 학업에 시간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현철 교수는 “학생선수는 신분이 이중적인 현실에 처해 있지만 실은 운동선수에 더 가깝다”며 “일반적인 수업보다는 운동과 연계된 수업을 주로 받는다”고 전했다. 양형석 농구부 감독 또한 “갈수록 학업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현재 엘리트 스포츠 체제 속에서는 학생선수들이 운동선수로서 운동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스포츠단(농구·야구·축구)에 속한 선수들은 오후부터 팀 훈련을 수행해야 하기에 일반적으로 이르게 수업을 마치곤 한다. 이로 인해 학업과 운동의 비중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김기훈 선수는 “운동과 학업에 8:2 정도로 비중을 두고 있다”며 “전술 등 단체로 훈련이 필요한 경우 감독님이 미리 공지해 주시면 수업이나 조별 과제에 양해를 구하고 빠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임동언 농구부 선수(스포츠산업전공 3)는 “학기 중에 연습 경기나 시합이 있을 때는 불가피하게 수업을 빠지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학업에 몰두할 수 없는 이유는 운동 실적을 중요시하는 엘리트 스포츠 체제 때문이다. 엘리트 스포츠 체제는 소수 대표 선수에게 경기력 향상과 메달 획득을 위한 지원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소수 대표 선수 중심의 육성 제도다. 이러한 구조는 상급 리그로 올라갈수록 필연적으로 다수의 중도탈락자를 발생시킨다. 실제로 전국의 학생선수 중도탈락자는 ▲2019년 1071명 ▲2020년 1478명 ▲2021년 2031명 ▲2022년 2502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도포기는 학생선수들에게 현실적 선택으로 다가오고 있다. 농구선수로 입학한 임정호 학생(스포츠과학부 1)은 지난 6월, 약 8년간의 학생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임정호 학생은 “대학에 오니 훈련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힘들었다”며 “프로 진출의 가능성에 관해 많이 고민했으나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 중도포기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여원 분당판교청소년수련관장은 “심리적 압박감과 부상 등으로 많은 학생선수가 중도 포기를 결심한다”고 전했다.
  
  중도포기를 결정한 학생들 앞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학생선수로 활동한 임정호 학생은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교 수업을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나 중학교 때부터 훈련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학업보다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었다”며 불가피했던 학습 결손을 이야기했다. 이어 “운동을 그만둔 이후 학교생활에 집중하고 있는데 학교 강의를 따라가는 것이 어렵다”며 “레포트 과제가 많은데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이 낯설어 과제를 할 때마다 난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중도탈락을 경험한 전문가들도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운동을 그만둔 후 다양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대학교 1학년까지 농구선수로 활동했던 윤여원 관장은 중도탈락 후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으로 학업문제를 꼽았다. 윤여원 관장은 “학창 시절 훈련으로 인해 결석이 많았고 수업에 들어가더라도 훈련의 여파로 대개 집중하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중도탈락 후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때 많은 학업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부상으로 대학교 4학년에 운동을 그만둔 임용석 교수는 “중도탈락 후 일반 학생으로서의 생활에 이질감을 느꼈다”며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혼돈을 겪었다”고 밝혔다. 

  학생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임용석 교수는 “자의 혹은 타의로 운동을 그만두는 상황이 왔을 때 초·중·고에서의 학교생활 및 병행해 왔던 학업이 큰 도움이 된다”며 학업 병행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임정호 학생은 “학교나 국가 제도 차원에서 선수들이 학업도 같이 병행할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활동 중인 학생선수에게 심리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여원 관장은 “해외의 경우 선수 개개인에게 심리상담사가 정신건강을 관리해주는 체계가 마련돼 있다”며 “국내도 상담사를 통해 학생선수들을 심리적으로 도울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학생선수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스포츠계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임용석 교수는 “엘리트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군 면제, 연금 지급 등 운동선수에 대한 여러 가지 혜택이 학생선수들이 겪는 문제를 더욱 극대화한다”며 “해당 혜택들은 암묵적으로 운동에 치중된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맥락을 잘 파악해 여러 정책과 지원으로 구조적 개혁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스포츠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스포츠클럽을 제시하고 있다. 임용석 교수는 “스포츠클럽 도입은 선수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학생이 다양한 리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며 “학교에서 다양한 체육 경험을 제공해 선수 진출 여부를 구분해 내고 프로 리그로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엘리트 스포츠와 학교 스포츠클럽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리그가 출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스포츠클럽이 정착하기 위해선 대학 스포츠에 대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윤여원 관장은 “스포츠클럽으로의 전환은 국민의 생활체육 향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엘리트 스포츠가 오랜 기간 관습화됐기 때문에 교육·체육계 구성원들의 전반적 인식이 바뀔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체육특기생들이 학교 교육에 흡수되고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리그가 확대되는 등 여건 마련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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