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고개를 치켜들고 이유 모를 부끄러움에서인지 나뭇잎이 얼굴을 붉혀가는 계절, 가을입니다. 사계절 모두 저마다의 정취를 자랑하지만 가을하늘에 오감을 내놓고 있자면 어느 계절보다 깊은 시정(詩情)에 잠겨 들곤 하는데요. 가을의 공기가 그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담고 있어선지, 눈을 가린 채 계절의 향기만 맡고도 가을만큼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종종 합니다.

  대자연 앞에선 그저 방만한 상상으로 들릴까요. 조소만 날리신다면 살짝 서운합니다. 가을에 피어나는 작은 꽃나무 한 그루만 있다면, 가을의 도착을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바로 ‘금목서’라고 불리는 꽃나무가 적어도 제게 있어서는 가을의 또 다른 전령인데요. 꽃이 피면 진한 향기가 만 리만큼이나 퍼져 나간다 해 ‘만리향’이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리기도 합니다. 

  금목서를 처음 마주한 건 일곱 살 때의 한 가을날이었습니다. 할머니 댁 근처만 가면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는 그 근원지를 찾아 사람의 걸음을 옮기게 할 만큼 충분히 매혹적이었죠. 일곱 살 아이 역시 한가득 퍼진 달콤한 향기를 따라가면 그 향기만큼이나 화려한 꽃이 나타날 거라는 기대를 안은 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걸음이 멈춘 곳은 작은 꽃나무였습니다. 몇 번 스쳐 지나갔던 이 나무가 꽃나무였다는 것도, 여기서 피어난 꽃에서 그만한 향기가 난다는 것도 믿기 어려울 만큼 아주 작은 꽃들이 가지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죠.  

  일곱 살의 꼬마도 감수성 있게 가을을 타는 법을 알았던 덕에, 그 작지만 진한 존재를 마주했던 순간은 시 한 편으로 남겨졌습니다. 가을의 달콤한 내음을 음미할 수 있게 해준 이 작디작은 꽃송이를 위한 저만의 서투른 헌사랄까요. 그만큼 예쁜 바탕에 이를 기록하고자 가장 화려한 디자인의 청첩장까지 할머니 댁에서 직접 골라 가져왔죠. 

  ‘보풀처럼 작은 꽃들, 자신의 향기를 만 리까지 나눠주느라 그렇게 작아졌나 봐요.’ 유일하게 기억하는 시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기억이 흐릿해져 가듯 어린 날의 감수성은 이제 사라져 버렸을지 모릅니다. 활자화된 감성을 담기에 제격인 청첩장처럼 화려한 종이도 없죠. 지금 제게는 종이 냄새 풀풀 나는 석회색의 신문 지면만 남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전 작아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향기를 힘껏 들이마시고, 그 향기 너머의 존재를 보기 위해 부단히 움직일 겁니다. 더 이상 말랑한 따뜻함으로 이들을 위한 헌사의 시는 쓰지 못하더라도, 대기에 흩어져있는 작은 존재들의 내음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지면을 위해 우리 사회 속 방백에 더 유심히 귀를 기울이려 합니다. 

  올해 가을은 유독 더 빠르게 지나가는 듯합니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수첩을 펴야겠습니다. 향기를 잔뜩 머금은 작은 꽃송이들이 떨어지기 전까지 어서 이들의 자취를 따라가 또 다른 시들을 써 내려가야 하거든요.
 

 

 

 

 

 

 

김지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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