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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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임은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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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언론·시민사회 모두의 변화 절실 
집회의 자유와 공공의 질서 간 균형 필요 
 
집회 보도, 갈등 아닌 원인에 초점 맞춰야 
건강한 사회가 건강한 집회를 만든다

대한민국헌법」 제21조에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최근 과도한 집회의 자유가 공공의 질서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집회·시위가 이러한 논쟁의 당사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집회·시위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개선 방향성을 살펴봤다. 


집회의 자유냐 공공의 질서냐 

  한국 사회에서 집회·시위를 둘러싼 논쟁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매년 불거지고 있다. 집회의 자유와 공공의 질서가 충돌한 올해 사례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집회가 있다. 

  지난 5월 16일과 17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조합원 2만여 명은 서울 도심에서 총파업 집회를 진행했다. 민주노총 조합원 채용을 강요한 혐의로 구속심사를 앞두고 있던 건설노조 소속 간부의 분신 사망 사건이 계기였다. 건설노조는 정부에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16일 야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집회를 이어갔으며 해당 집회에 참여한 노숙 인원은 약 1만 명에 달했다. 심야까지 이어진 노조원의 농성과 노숙이 교통난과 소음을 발생시키자 일각에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노숙 장소 일대에서는 노조원 간 시비 2건과 소음 6건 등의 신고가 접수됐다.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시위에서도 민주노총 집회와 유사한 양상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전장연은 2001년 1월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수직 리프트가 추락하며 장애인이 사망한 사건을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열기 시작했다. 2021년 12월부터는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해 운행을 지연시키는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시위는 일부 시민들에게 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어 냈다. KBS가 비장애인 성인 95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지하철 시위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는 답변은 약 25%였으나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는 답변은 약 40%였다. 

  이처럼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집회·시위에 관해 일부 전문가는 역효과를 우려했다. 이병훈 공공상생연대기금 이사장은 “집회나 시위는 국가 구성원 일부가 그들의 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해결책을 요구하기 위해 헌법이 명시한 시민권을 행사하는 행동”이라며 “집회 참여자들의 주장이 정부 기관에 수용되지 않을 경우 자연히 이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집회를 벌이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과격화된 집회가 지나치게 시민의 불편함을 유발할 경우 여론의 역풍을 받게 된다”며 “그럴 경우 참여자들이 요구하는 바가 오히려 일부 시민에게 반감을 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갈등 해결 못 하는 정부 대응 

  지난해 12월 서울특별시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무정차 통과로 맞대응했다. 김상겸 명예교수(동국대 법학과)는 “서울시는 시위 과정에서 인명 피해의 발생을 막기 위해 무정차 통과로 대응하는 방식을 취했다”며 “그러나 이는 궁극적으로 시위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최선의 대응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어 “집회의 위험성이 내재 된 집회 현장에서 집회 참여자가 과격한 방식으로 나오면 정부도 공공의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강하게 사용한다”며 “전장연의 시위에 지자체가 강경하게 대응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통이 부재한 공권력 행사가 오히려 갈등을 양산하는 등 또 다른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지난 5월 31일 진행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대규모 도심 집회에서 경찰은 건설노조가 사망한 간부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한 시민분향소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했다며 집회를 해산하라고 지시했다. 전누리 금속노조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집회를 강제해산 하는 정부의 대응 방식은 오히려 집회 참여자들과 정부 간의 원만한 합의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병훈 이사장 또한 “집회가 과격하게 치닫는 이유에 정부의 문제도 있다”며 “집회의 원인을 정부가 제대로 직면하지 않으면 길거리 정치 혹은 과두 정치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인 보도에 그치는 언론 

  집회·시위와 같은 사회적 갈등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는 이를 접하는 국민의 인식과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언론은 시민에게 집회·시위를 간접적으로나마 전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집회·시위가 장기화될수록 보도될 의제로서 집회·시위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홍주현 교수(국민대 미디어·광고학부)는 “시위가 장기화되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며 “전장연 시위도 초기에는 활발히 보도됐으나 시위가 장기화될수록 언론 보도에서 사안의 쟁점은 사라지고 시민의 불편만 남게 됐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집회·시위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양상은 어떨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18일 중대신문은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민주노총’ 키워드를 입력 후 관련 기사에 나타나는 연관어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불법 행위 ▲압수수색 ▲불법 집회 등이 민주노총 관련 보도의 연관어로 나타났다. ‘야간집회’ 키워드를 입력한 결과에서는 ‘불법 전력’과 ‘기본권’을 비롯한 연관어가 도출됐다. 해당 결과에 대해 홍주현 교수는 “정부의 대응 방침만 쟁점화되었을 뿐 정작 민주노총이 집회를 벌이게 된 배경과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언론이 쟁점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회·시위에 대한 언론의 선택적이고 편향적인 보도 역시 시민이 집회의 본질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있어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이병훈 이사장은 “언론은 자사의 성향에 따라 특정 진영의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하지만 반대 특정 진영의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도해서 국민을 오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관용하지 못하는 시민들 

  집회를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선은 이미 시민사회에 만연하다. 이병훈 이사장은 “정부와 언론의 태도가 시민의 태도 또한 부정적으로 흘러가게 해 결국 성숙하지 못한 시민사회의 모습을 갖추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서울신문에서 주관한 2016 서울신문 대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집회·시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약 46.4%가 ‘평화 시위에서 변질돼 과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집회를 ‘과격하다’고 여기는 기준이 타국에 비해 낮다고 입을 모았다. 이병훈 이사장은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집회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서구 사회에 존재하는 ‘tolerance(관용의 정신)’와 대비된다”고 전했다. 이어 “관용의 정신이란 다른 사람이 집회·시위를 할 때 언젠가 자신 또한 집회의 참여자가 될 수 있음을 알고 불편을 충분히 감수하는 태도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박현수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조직부장은 “한국 사회는 대규모의 농성이 진행되면 과격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 사회에서 집회·시위를 과격하다고 인식하는 기준은 폭력과 파괴의 정도가 아니라 기존의 사회 질서에 균열을 내는지의 여부”라고 강조했다. 


건강한 사회에 건강한 집회가 깃든다 

  한국 사회에 건강한 집회·시위 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단일 주체를 넘어 정부와 시민사회 전반의 노력이 함께 동반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집회·시위 참여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병훈 이사장은 “행정 기관이나 정당을 통해서 시위자의 사안을 수용하고 소통을 거쳐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현수 조직부장 또한 “집회의 요구와 주장에 공감하고 토론할 준비가 된 건강한 사회인지 되묻는 게 우선”이라고 전했다. 

   시민사회에는 행정법에 명시된 ‘수인의무’를 준수하는 성숙한 태도가 요구된다. 박현수 조직부장은 “법에서 보장하는 수인의무란 수용하고 인내한다는 뜻”이라며 “이는 다른 의견을 말해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보장하기 위해 법에 명시된 의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민주화 운동도 당시에는 불법으로 여겨졌다”며 “그러나 현재는 민주화 운동이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만큼 시민사회는 집회·시위를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인지해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지나치게 과격화된 집회·시위를 어느 정도 규제함으로써 집회의 자유와 공공의 질서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명확한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차진아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공권력 행사가 가능한 정부가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명확하고 현실적인 기준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집회의 소음 측정 기준이 명시된 집시법을 강화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면서도 “집회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에만 행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집회의 자유와 공공의 질서 사이의 균형을 위해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 모두는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교점을 이룬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두 권리 중 무엇이 중요한지는 결코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집회와 시위를 둘러싼 의견의 타협점을 찾아가려는 과정이 건강한 사회 형성의 밑바탕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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