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은 육체로부터 시작하여 정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육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끊임없이 육체의 건강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은 정신의 건강을 지속해서 돌보고 치유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름답다’는 것은 ‘건강’을 전제로 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 없이 무엇을 수행하고 성취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답변을 위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중대신문을 훑어보았다. 이미 기획한 연재와 인터뷰가 대부분의 지면을 채우면서 여타의 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가 찾고자 한 답변은 보이지 않았다. 
젊고 건강할 때 늙고 병약할 미래의 자신에 대해 그 어떠한 생각도 연결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중대신문은 교원과 학생을 연결하거나 세대 차이를 좁혀주는 통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이 고립되고 전도된 캠퍼스 풍경은 중대신문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필자가 찾고자 한 답변과 동떨어져 있었으며, 중대신문이 가져야 할 미래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지면은 예정된 학사 일정과 학내 사건들을 알리면서 다각적인 노력으로 채워졌다. 계속되는 연재 기사, 그리고 학내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목소리는 다음 호를 기다리게 한다. 언제나 학생 편에서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중대신문 구성원들의 노고는 높이 평가된다. 끝으로 중대신문이 오로지 학생들만을 위한 정보 소식지가 아니라 학내 구성원들, 특히 노교수의 어려운 상황도 밝히는 등불로 다시 우뚝 솟길 바란다. 

 

홍병선 교수
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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