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묻는다. 지구 종말, 혹은 사랑. 당신의 화두는 둘 중 어느 쪽이냐고.

  망설인다. 어느 한 쪽을 택하기보다는, 어느 한 쪽을 택하지 못함에 안타깝다.

  영화 <지구 종말 vs. 사랑>은 오늘날 우리에게 당도한 자아와 세계의 분열에 질문한다. 지구 종말과 사랑 사이, 당신은 어디를 보고 서 있냐고. 나는? 종말에 맘 졸이며 사랑에 애태운다. 취약한 세계에서 공존을 고민하는 마음과 굼뜨고 애처로운 마음, 모두 소중하다.

  도시는 궁핍하고, 정치는 퇴행하며, 지구는 망가져 간다. 쇠약해진 사회를 지켜보며, 자신과 세계의 합치를 고민하는 이들이 말을 걸어온다. “외롭다.” 앎과 삶이 이어지지 못함에서 비롯된 고독이란다. 개인적 영향은 미미하고, 공적 연대를 통한 해결은 요원해 보이는 동시대를 걱정한다. 강의실과 노트, 노트와 리포트 사이를 오가는 언어는 흡수되지 못한 채 겉돈다. 우리의 지식이 낡아 시효가 다한 것일까, 지식이 야기하는 불편과 논쟁을 맞이할 용기가 없는 것일까.  

  마주하는 가치를 고루한 것으로, 빈곤을 불쾌한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배움은 각자도생을 위한, 서로에 대한 살생의 도구 이상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동시대를 저주하는 처절한 무력감과, 그럼에도 앎과 삶을 연결하자며 거듭해 공존을 다짐하는 발버둥이 교차한다. 종말은 마음을 다그친다.  

  그럼에도 어떻게 당신은 시대의 절망을 딛고 서는가. 동시대의 괴로움에 맞서 나를 몰입하게 하는, 몰입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가 있다. 넉넉하고 단단한 마음이 담긴 순간을 그들과 함께한다. 애인의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갈 때,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예전과 같이 나를 위한 행복을 빌어줄 때, 동거인들이 아프지 않고 존중받는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때, 아프던 이들이 “오늘은 조금 덜 힘들었다”고 전해올 때. 애틋한 순간은 증폭되어 오랜 시간 곁에 머무른다.  

 이런 절절함을 떠올릴 때면 지구의 종말도, 사회의 퇴행도, 단절된 관계도 잠시 잊을 수 있다. 메일과 과제와 뉴스를 놓은 채, 바로 앞의 당신을 바라본다. 역시나 이러한 복됨이 생을 지켜야 함을 주절거린다. 사랑은 마음을 움직인다.  

  영화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지만, 현실의 당신에겐 꼭 ‘종말’과 ‘사랑’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종말을 대체할 거시적 의제도, 사랑을 대체할 미시적 가치도 떠오른다. 본질적 세계관의 합치와 풍족한 삶의 순간을 동시에 추구하는 당신, 또 동시에 당당히 불화하는 당신. 우리 생의 화두는 둘 모두를 향해 몸부림친다. 시대의 소명에 도망치지 않고, 끝없는 우울에 침잠하지 않고 동반자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 이 도시의 키스에 구태여 의미를 붙여본다면 그런 것들이 아닐까. 갈등을 애정하는 초상들이 흔들리고 있다.  

 

 

 

 

 

 

박다안 학생
사회학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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