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10년 전 9월, 데이비드 호크니의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높이가 4.5m, 폭이 12m에 이르며 모두 50개의 캔버스가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이 거대한 풍경화를 직접 본 이후 나에게 9월의 모든 풍경은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을 관통하여 조망된다. ‘보는 것’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내가 화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크니가 그의 주변 사람들과 자연 풍경을 관찰하는 방식, 그러니까 카메라의 핀홀과 같이 고정된 시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콜라주 하는 방식은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준다. 

  일상적인 것들 안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든다는 호크니의 메시지는 압도적인 그의 작품과 달리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가치를 얼마나 자주 발견할 수 있는가? 화가이자 교수인 내 경우에도 나의 작품세계에 빠져있거나 교육의 일선에서 바쁜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가을바람이 작업실 문을 넘나드는지, 저 앙상한 나무는 언제 적에 꽃을 피웠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다. 또는 매일 지나다니는 강의실 건물 주변 풀숲에서 못 보던 고양이 한 마리와 눈을 마주치면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의 조각을 하나씩 모아두고 시간이 지나 다시 되돌아보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확장되고 깊어지는 감각적 경험이 그려낸 큰 그림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점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여 조각난 캔버스에 옮기고 그것을 콜라주 하여 만들어 낸 호크니의 대형 풍경화 연작은 <더 큰 그림>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거대한 풍경화가 전달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술적 가치는 ‘더 큰 메시지’라고 불린다.  

  호크니는 미술의 역사에서 인상주의 이전까지를 점령했던 환영주의 회화가 표방하는 눈속임 기법(Trompe-l’oeil)을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차이’를 발견해 냈고, 그의 방법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보는 것’에 대한 감각적 질문을 던진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며, 내일은 곧 과거가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본 것은 내일의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이’ 안에는 더 큰 가치를 발견하게 만드는 힘이 내포되어 있다.  

  호크니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을 콜라주 하였듯, 우리도 일상의 작은 변화를 기억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를 만들어 간다면, 오늘보다 조금은 더 커져 있는 내일의 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하루하루, 우리의 오늘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내일의 ‘더 큰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비추어 볼 수 있음을 잊지 말기를! 

 

 

 

 

 

 

 

 

 

정영한 교수
서양화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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