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4년 예산안’을 발표하며 건전재정 기조를 흔들림 없이 견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내년 총지출은 올해보다 약 2.8%가 증가한 656조 9000억원으로 근 20년 이래 역대 최저의 예산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명시된 12개의 예산 항목 중 지출구조조정의 몫은 오로지 연구개발(R&D) 분야 앞에 지워졌다. 내년도 R&D 예산은 올해 대비 약 16.6% 줄어든 25조 9152억원으로 편성됐다. 지난 10년간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5% 내외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3.94%라는 현 정부의 R&D 예산 비중은 초라할 따름이다.
 
  이러한 R&D 분야의 예산 삭감에 대한 이유로 정부는 지난 5년간 증액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연구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과 연구계에 ‘이권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목했다.
 
  R&D 예산의 전례 없는 삭감은 곧 한국의 기초연구 환경이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초연구의 경우 기간과 경제성을 따지지 않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당장의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는 눈초리 앞에서 어떠한 유의미한 기초연구가 싹을 틔울 수 있단 말인가. 나아가 연구계 이권 카르텔에 대한 어떠한 근거와 내용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내미는 비판의 잣대 앞에서 어느 연구자의 사기가 올라간단 말인가. 연구계에 문제가 있다면 정확한 문제 원인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IMF 외환위기에도 국가 R&D 예산이 삭감된 일례는 없었다. 긴축의 제물대에 국가의 미래를 일구는 기초연구가 올라가선 안 된다. 미래가 달린 연구계의 긴축으로 실현한 건전재정은 결코 ‘건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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