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취재처에 연락할 때면 대본을 작성하고 오랜 시간 심호흡을 거친 후에나 수화기를 들 수 있습니다. 수신음이 이어질 때면 전화를 받지 말아줬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곡해하진 않을지, 목소리가 듣기 불편하진 않은지, 전화를 거는 시간이 적절한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콜 포비아’입니다. ‘콜 포비아’는 정신과 의사 존 마샬의 저서 『소셜 포비아』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Call과 Phobia의 합성어인 ‘콜 포비아’는 전화가 오면 불안감을 느끼고 통화가 편하지 않아서 전화하는 것을 피하는 증상을 의미하죠.

  ‘콜 포비아’를 겪는 사람들은 통화의 본래 목적보단 자신의 실수나 상대방의 평가에 더 집중하곤 합니다. 상대방이 괜히 화를 내진 않을지 항상 긴장 상태에 놓입니다. 기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언제나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곧 통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완벽주의적 사고방식이 통화라는 일상적인 행위에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성취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건설적인 인간상입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에 따라 사고하는 사람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리는 완벽주의의 유형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완벽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개인의 목표에 집중하는 개인기준 완벽주의, 타인의 부정적인 평가에 집착하는 평가염려 완벽주의입니다. 평가염려 완벽주의자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고무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데 어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스스로의 성취에 만족하지 못하니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고, 곧 평가염려 완벽주의적 성향은 콜 포비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친교나 소통이 주목적인 통화에서 타인의 평가에 집중하다 보면 통화는 자연스럽게 고통스러운 행위가 됩니다. 이는 단지 통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임이나 SNS 등의 일상적인 행위와도 관련이 있겠죠. 일상이 고통스럽다면 불안과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은 수많은 타인과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그만큼 많은 시선 속에 사로잡히게 되죠. 이러한 상황에서 평가염려 완벽주의에 따라 살아가는 건 불안감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이 목표의 기준이 타인의 평가가 되는 순간, 우리는 24시간 긴장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죠.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타인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쓸수록 진짜 나의 삶과는 멀어져 갑니다. 남의 기준에서 완벽한 삶이 아닌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추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문준빈 사진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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