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력한 수분 매개자 꿀벌. 영국 왕립지리학회는 꿀벌을 ‘지구상 가장 중요한 생물 5종’에 선정하기도 했는데요. 최근 이상 기후 등으로 꿀벌이 살기 힘든 환경이 형성되며 집단 폐사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꿀벌의 위기가 비단 꿀벌 한 종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죠. 이번 주 사진부는 꿀벌의 생태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들여다봤습니다. 생태계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인 만큼,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꿀벌과 인간의 ‘공존’에 관심 가져보면 어떨까요. 임은재 기자 zzzzz@cauon.net
꿀벌군집붕괴현상은 꿀벌 무리가 집단으로 폐사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국양봉협회는 지난 4월 협회 소속 농가의 월동 꿀벌 폐사율이 약 61.4%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의 2배 이상으로 약 94만 4000여 개의 벌통이 사라진 셈이다. 꿀벌 실종을 둘러싸고 다양한 요인이 지목되고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꿀벌 집단 폐사는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문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당수의 요인이 기후변화에서 비롯됐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상 기후에 사라지는 꿀벌들
올해 한국의 벚꽃 개화는 3월 25일로 평년보다 14일 빨랐다. 관측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개화 시기 변동은 꿀과 꽃가루를 먹이로 삼는 꿀벌에게 치명적이다. 기후변화가 꿀벌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 중인 이지원 서울대 기후연구소 연구원은 “개화 시기의 변동이 꿀벌의 먹이활동을 어렵게 한다”며 “오랫동안 유지돼왔던 식물과 꿀벌의 균형이 깨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개화 시기가 꿀벌의 활동 시기와 불일치해 꿀벌들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안성시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김동완씨(60)는 “심한 기온 변동으로 월동 중인 벌들이 밖으로 나올 시기를 착각해 죽기도 한다”고 말했다. 꿀벌은 무리를 지어 둥글게 뭉침으로써 체온을 유지해 추운 겨울을 버틴다. 그런데 이상 기후 현상으로 봄이 왔다고 착각한 꿀벌들이 월동을 해제하면 이러한 ‘봉구’가 해체된 상태로 추위를 맞이하게 된다.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김대운씨(84)는 “일하러 나갔다가 예상치 못한 추위를 맞이한 벌들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엉겨 죽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여름 폭염·폭우가 반복되는 등 이상 기후 현상이 숱하게 발생했다. 이상 기후로 인해 변덕스러워진 날씨는 벌집 내부의 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꿀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상 기후 현상이 발생할 경우 꿀벌들은 평소보다 더 많은 날갯짓으로 벌집 내부의 온·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조절해야 한다. 많은 에너지 소모는 스트레스로 이어지고 수명 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 기온 변화뿐만 아니라 미세먼지도 꿀벌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준다. 신재한 서울대 기후연구소 연구원은 “미세먼지 농도 증가는 꿀벌의 밀원 탐지 기능과 꿀벌들 간의 의사소통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인간과 꿀벌의 공존을 위해
꿀벌이 처한 위기를 알리고 인간과 꿀벌의 조화로운 공존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도시 양봉가 덕에 도심에서도 꿀벌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여의도에 위치한 KB국민은행 본사 옥상에는 꿀벌들이 산다. 도시 양봉 기업 어반비즈서울을 운영하는 박진 대표는 “도시 양봉이 꽃의 발화율을 높여 도시 생태계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벌들의 활동 반경이 벌통으로부터 약 2km임을 감안하면 양봉장 운영으로 주변 2km의 생태를 개선하는 효과를 얻는 셈이다. 꿀벌은 강력한 수분 매개자로 생물 다양성 유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 도시 양봉장 주변의 개화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다양한 곤충과 새가 번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도시 생태계 내의 생물 다양성 증가라는 효과를 낳는다. 박진 대표는 “꿀 생산으로 수익을 얻고 있지만 도시 생태 개선과 꿀벌 보호에 앞장서는 등 공익적 측면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꿀벌의 소멸이 생물 다양성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한다. 신재한 연구원은 “꿀벌 한 종의 소멸만으로 식물 수가 급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식물 수의 감소는 이산화탄소 양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한다”며 꿀벌의 감소가 기후 악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꿀벌 소멸은 전 인류의 문제다. 꿀벌 개체 수 감소는 곧 식량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재한 연구원은 “상당수 농작물이 꿀벌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진다”며 “꿀벌 수의 감소는 농업에 큰 영향을 끼치며 이는 기아 문제의 심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꿀벌 집단 폐사는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면 당장은 실감할 수 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각심 없이 무심하게 지나가 버린다면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글 임은재 기자 zzzzz@cauon.net
사진 임은재·문준빈·고희주 기자 moonlight@cau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