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급증하는 자살을 막기 위해 2004년부터 5년마다 자살예방기본계획안(계획안)을 내놓고 있다. 지난 4월 5차 계획안이 발표 됐지만 자살예방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미지수다. 개정되는 계획안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18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효성을 보이지 못하는 계획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와 개선 방향성을 들여다봤다.

  정신병리학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제5차 계획안을 통해 보건복지부는 청년 자살예방대책으로 생명안전망 구축과 자살위험요인 감소 외 3가지 분야를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자살 고위험군 치료 강화와 정신응급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정신건강 검진 주기를 신체 건강검진과 동일하게 10년에서 2년으로 단축한다고 명시했다.

  이러한 계획안에 관해 김명희 교수(경상국립대 사회학과)는 “현재의 계획안은 청년들에게 특화된 내용의 정책안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방향은 전형적인 의료 모델에 머물러 있다”며 “이는 자살을 정신질환의 결과로 인식하는 동시에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부추길 공산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만의 국가적 특수성에 근거한 자살예방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박현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본부장은 “한국은 1차 계획안을 핀란드의 병리학적 정책을 기준 삼아 수립했다”며 한국 자살예방정책의 시작을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핀란드는 빈곤과 실업을 막는 사회보장제도가 구축돼 있어 정신병리학적 관점에서 자살예방이 가능했지만 한국은 다르다”며 “한국의 자살이 타국과 어떤 측면에서 다른지 비교하는 연구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삶 자체가 사회적인 영향을 받는 만큼 계획안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는 필요성도 대두됐다. 이민아 교수(사회학과)는 “정부는 우울증이 심하면 자살의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가정하에 정신건강 치료에만 20년 가까이 매진하고 있다”며 “사회적 안전망까지 고려한 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자살예방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안전망 마련 시급해 
  그렇다면 청년이 마주한 사회현실이 반영된 계획안이 되기 위해선 어떠한 정책이 이뤄져야 할까. 전문가들은 청년의 어려움이 경제적인 상황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계획안이 청년의 고용 문제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민아 교수는 “우리 사회는 안전망이 없어 청년들은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부담을 지게 되고 이는 곧 자살로 이어진다”며 “일자리를 찾고 있는 청년이 취업에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살 위험군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상담센터가 청년에게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도 있다. 김명희 교수는 “상담센터에서 구직 관련 정보에 대한 청년 실업자들의 접근성을 강화하고 구체적인 일자리를 연결해 줄 수 있도록 노동정책과 복지정책의 연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안 또한 자살예방정책의 방향성으로 거론된다. 김소윤 교수 (연세대 의료기기산업학과)는 “SNS 앱을 통해 소통하는 청년 세대의 특징을 반영해 힘든 상황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온라인 소통망을 구축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SNS 앱을 통해 자신의 상황과 자살 충동 심리를 깊이 상담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며 “청년은 삶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질 때 자살을 생각하므로 정서적인 교류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사회가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머리를 맞대 해결책 찾을 때 
  사회적 안전망과 네트워크가 청년에게 원활하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행정부처 간 협력도 필수다. 자살예방 담당 정책을 각 부처가 맡아 진행하지 말고 다양한 부처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현민 본부장은 “자살과 관련된 문제는 교육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국방부·환경부 외에도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며 “각 부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때 보다 효과적인 자살예방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부처를 조정할 수 있는 상위 기관으로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늘어가는 청년 자살을 진정 예방할 수 있는 정책이 되려면 청년이 처한 사회현실을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봐야 한다. 더 이상 계획안을 의학적인 관점에 치우쳐서 논의할 수는 없다. 청년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에 대해 각 행정기관이 논할 때, 비로소 자살예방기본계획안은 그 존재 목적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인터넷신문위원회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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