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특권은 시행착오의 결과를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젊은 날 좌절한 경험은 후일 자신을 지탱하는 견고한 단상이 되어줄 것이다. 늦은 나이에 음악대학에 진학해 앞날을 고민하며 방황하던 청년의 선율은 훗날 많은 이의 가슴에 스며들어 또 다른 영감을 자극한다. 여기 인생을 살며 떠올린 악상을 오선지 위에 녹여내며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가 있다. 시행착오의 불확실성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허수현 작곡가(작곡과 86학번)를 만나봤다. 정다연 기자 almostyeon@cauon.net
 

사진 정다연 기자
사진 정다연 기자

“뮤지컬을 만나지 못했다면 불행했을 것 같아요. 공부만 하다 음악 분야로 진로를 전향한 것, 다른 장르가 아닌 뮤지컬 음악을 하게 된 것이 참 다행이죠.”
 

리프라이즈(Reprise). 뮤지컬에서 앞서 등장한 멜로디를 변주하거나 반복함을 뜻한다. ‘내 곡을 쓸 수 없는 운명’이라 여겼던 청년은 좌절의 순간 불렀던 노래를 웃으며 리프라이즈했다. 인생이란 넘버를 써 내려가고 있는 허수현 동문(작곡과 86학번)의 작곡 세계를 1열에 앉아 관람해 봤다. 
 

  -올해 상반기 본인의 곡들이 끊임없이 공연장을 채웠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계가 경직된 탓에 뮤지컬 <루드윅>·<인터뷰>·<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재공연이 많았어요. 신작은 뮤지컬 <보이체크 인 더 다크>와 뮤지컬 <신의 손가락> 정도였기에 아주 바쁘진 않았습니다.” 
 

  -중앙대 작곡과에 진학한 이유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학교 선생님께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어머니께서 음악 하기를 반대하셨고 저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죠. 주변에 음악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이 없어 음악 분야로 진출하는 길을 잘 모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히 공부만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어요. 삼수를 하며 음악대학 진학을 결심했죠. 악기를 전공하기 위해선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악기를 배워야 했는데요. 음악을 늦게 시작한 상태에서 진학할 수 있는 학과는 작곡과가 유일했습니다. 

  삼수 때부터 준비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를 많이 하지도 못했죠. 실기 과목이 많은 대학은 지원이 어려우니 상대적으로 적은 과목을 보는 중앙대에 지원했고 그렇게 중앙대 작곡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하다. 

  “시창청음 수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악기의 도움 없이 악보를 보고 정확히 노래할 수 있는 능력과 음을 듣고 악보에 적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수업이죠. 당시 중앙대 입시 과목엔 시창청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래서 듣는 귀가 약한 친구들이 많이 진학했던 것 같아요. 다들 시창청음 시간을 정말 무서워했죠. 저는 절대음감이라 늘 A+의 성적과 함께 부러움과 시기질투를 받았던 생각이 납니다.(웃음)”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다고. 

  “제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실용음악 전공이 없었어요. 대부분 클래식 전공이었고 그중 미적 감각의 파괴를 추구하는 현대음악을 주로 가르치던 분위기였죠. 쇼팽의 아름다운 선율을 생각하고 음악대학에 진학했지만 이와는 거리가 먼 수학 공식 같은 음악을 배우며 많이 방황했어요. 

  군 제대 후 3학년 말에 한 선배로부터 녹음실 아르바이트 제의를 받았는데요.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죠. 녹음실 사장님께선 방송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이었는데요. 제 음악이 방송에 쓰일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충격이었죠. 학문을 익히기보단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누구나 좋아하고 즐겨 부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방송음악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기독교 관련 뮤지컬을 하시는 감독님을 만났는데요. 제게 감각이 있다며 뮤지컬 음악 편곡 작업을 맡기셨습니다. 그렇게 편곡 작업을 하며 뮤지컬에 흥미를 붙이게 됐죠.” 
 

  -본격적으로 뮤지컬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녹음실에서 방송음악과 CM송을 만들다 보니 가요도 도전하게 됐는데요. 듣기 좋지만 부르긴 어렵다며 ‘뮤지컬 음악 같다’는 반응이 다수였죠. 뮤지컬 음악 작곡에 매력을 느꼈지만 당시 뮤지컬 시장이 매우 열악해 업으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뮤지컬 음악 작곡은 부업 삼아 어린이 뮤지컬의 곡을 쓰거나 편곡만 했어요. 당시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편곡했는데요. 편곡자로는 조금씩 알려졌지만 일 년에 한두 건 정도로 일이 매우 적었습니다. ‘내 곡을 만드는 길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죠. 

  본격적으로 뮤지컬 작곡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뮤지컬 유행이 일고서부터인데요. 2005년 이후 뮤지컬 제작사들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뮤지컬 쪽 작업만 해도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죠. 때마침 컴퓨터 기능이 발전하면서 카세트나 CD로만 노래를 듣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또 미디(MIDI, 컴퓨터와 전자 악기를 연결하는 작곡 프로그램)의 발달로 녹음실에서 음악을 만들 필요가 없어지면서 엔지니어나 연주자의 비중도 줄었죠. 자연스럽게 음반 및 녹음실 산업이 사장되며 저도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때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던 뮤지컬 음악 작곡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결정적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제 배우자인 추정화 뮤지컬 배우를 만나면서 뮤지컬 음악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추정화 배우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생긴 인맥을 활용해 저를 여기저기 소개해 줬어요. 그렇게 뮤지컬 <라디오 스타>의 작곡을 맡아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작곡상까지 받았죠. 이를 계기로 뮤지컬 분야에 완전히 뛰어들게 됐습니다.” 
 

허수현 작곡가는 수많은 관객을 동원해 콘서트를 진행할 만큼 사랑받는 곡들을 만들었다. 사진제공 국립정동극장
허수현 작곡가는 수많은 관객을 동원해 콘서트를 진행할 만큼 사랑받는 곡들을 만들었다. 사진제공 국립정동극장

  -작곡가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 

  “항상 시간에 쫓긴다는 거죠. 대본이 미완성되거나 초고가 나와도 거듭 수정되고 혹은 대본이 아예 엎어지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렇다 보니 곡 작업을 일찍 시작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주어지는 시간은 적어지죠. 관객들은 과정은 모르고 결과물만 보고 판단하니 하소연할 사람이 없어요. 순발력이 필요하고 날래야 한다는 점이 제일 어렵습니다.” 


  -뮤지컬은 협업이 중요하다고. 

  “모든 제작진이 연출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뮤지컬 제작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맡은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맡은 부분도 고려해 극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작가는 대본을 쓸 때 작곡가가 음악으로 극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틀을 만들고, 작곡가는 음악 안에서 안무가가 배우의 움직임을 잘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작곡해야 해요. 저 역시 모든 제작 파트를 숙지해 함께 일하는 분들께 믿음을 주고자 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유기성에서 관객들이 만족하면 저도 희열감을 느낄 수 있죠.” 


  -단 한 명의 뮤즈를 꼽자면. 

  “추정화 배우죠. 그는 본래 배우였고 저는 편곡자였는데요. 현재는 추정화 작가 및 연출가, 허수현 작곡가 및 음악 감독이 됐습니다. 둘이 함께 일하면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콤비라고 할 수 있죠. 

  함께 창작 초연을 제작할 땐 추정화 배우가 제 곡에 대해 기탄없이 평가하기도 합니다. 남이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부부니까 가능한 일이죠. 딸이 저희 부부가 작업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는데요. 둘 다 다크써클이 엄청나게 내려와 있답니다.(웃음)” 


  -향후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앞으로 소극장 공연도 계속하겠지만 중·대극장을 향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대극장은 대부분 라이선스 작품(외국에서 창작된 작품)이 올라오다 보니 창작 작품을 올리는 게 어려워요. 새로운 도전인 셈이죠.” 


  -한국 뮤지컬이 더욱 발전하려면. 

  “옛날에는 소수만이 몸담다 보니 그들만의 리그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실력 있는 사람들은 가요나 영화 음악 쪽으로 빠지기도 했죠. 하지만 뮤지컬 산업이 급성장하며 실력자들이 몰리고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한국에서 아직 뮤지컬이 아주 대중화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뮤지컬의 저변이 확대돼 관객층이 다양해지고 많은 사람이 뮤지컬을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유능한 창작자들이 원 없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죠.” 


  -꿈을 찾아 방황하는 중앙대 후배들에게 한 마디.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뮤지컬계에 종사하게 될 줄 몰랐지만, 매 순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어떤 장르든 도전 의식을 지니고 공부했던 경험이 뮤지컬 음악을 작곡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현재의 제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죠. 어떤 상황이든 최선을 다하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길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구원 투수입니다. 저는 너무 짧은 시간을 공부해서 왔잖아요. 합격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죠. 어쩌면 도피처처럼 진학한 학교지만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아줬다고 느꼈습니다. 중앙대에 입학하지 못했더라면 음악의 길을 걷지 못했을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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