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 누군가는 울먹이며, 또 누구는 벅차 떨리는 목소리로 동료의 이름들을 호명한다. 제삼자인 시청자로선 다소 미적지근하게 느껴지곤 했던 시간인데. 매주 신문이라는 어엿한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 서 보니 결국 그 작품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었던 이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A3 정도 크기의 종이가 열두 바닥, 혹은 열여섯 바닥. 그 주의 세상이 여기 담긴다. 한정된 지면 안에서 양질의 정보를 밀도 높게 구성하는 데는 취재원의 인용구 한 마디 마디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터뷰 가능 여부를 물으려 수십 번씩 긴장 속에서 운을 띄웠고, 취재원이 말을 뱉으려 들숨을 쉴 땐 입술을 축이게 됐다. 드라마 <미생>을 보고 한때 상사맨을 꿈꿨던 나는, 지난 학기 일종의 ‘영업’을 뛰면서 수없이 좌절했다. 이를 버티게 해 줬던 건 각자의 자리에서 나의 기자 생활을 정신적으로 지지해 준 이들이었다.
 
  먼저 혜성특급 식구들! 스무 살이 되고 가장 잘한 일로 아르바이트를 한 일을 꼽게 한 사람들. 졸업 후 매너리즘에 빠졌던 나를 구출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겨울 두어 달의 근무를 끝맺음과 동시에 신문사 출근이 시작됐는데, 힘에 부칠 때면 손끝이 아릴 만큼 추웠던 그 계절이 사무쳤다. 행복했던 기억은 휘발성이 강해 붙잡으려 더 애쓰게 된다. 그래서 하루도 잊지 못하나 보다.

  그리고 고향에 있는 친구들아!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책임지고 있는 너희가 없으면 내 기억의 허리가 끊긴다. 졸업하고서도 연을 잇는 일은 절대 당연하지 않다. 옛 친구를 잊지 않고 들여다보는 데는 보다 큰 에너지가 필요할 테니. 그런 만큼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에 담긴 수고로움이 응원 같았고 위로 같았다.
 
  이렇게 나를 찾아주는 소중한 모든 인연들에게. 얼마나 귀한 시간을 들여 기억해 주고, 궁금해해 주고, 살펴봐 주는지 너무나 잘 안다. 핑계로 들리겠지만 그동안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답장이 될지, 나와 계속 연락할 마음이 들지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다 결국 창을 닫았다. 나는 영화 주인공도 아니지만,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르는 척하고 싶어진다는 대사가 맘에 박힌다.
 
  내게 이 공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과분한 애정에 힘입어 다시 한번 손바닥만 한 공간을 일궜다.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채우고 싶었다. “여론이 좋다, 사람이 좋다.” 지금도 사람 덕분에 살아간다는 얘길 하는 내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친애하는 독자님들. 저만 아는 이야길 해서 지루하셨나요? 상술했던 ‘좋은 신문’을 위해서 아이템을 선정할 때면 기사화하기 애매한 주제는 “밸류가 없다”며 까이곤 합니다. 그렇지만 송곳 박을 땅도 마련하기 힘든 시대에, 여기만큼은 제 이야기를 심어보고 싶었어요. 때론 이런 이야기가 정보로 빽빽한 지면 사이에서 숨통을 틔워 주는 하나의 ‘밸류 있는’ 아이템 아닐까요.

신지윤 여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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