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대중화된 소재에서 재미를 발굴하곤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피어오르는,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오밀조밀한 경험에서 색다른 재미를 이끌어내는 이도 있다. 많은 이들이 도전하길 꺼리는 낯선 소재에서 무한한 감동을 선사하는 이야기를 그리는 권혁주 동문(철학과 98학번)이다. 독자와 창작자 각각이 느끼는 재미의 주파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공명을 시도하는 권혁주 만화가의 서사를 짚어봤다. 정다연 기자 almostyeon@cauon.net

사진 정다연 기자
사진 정다연 기자

“만화가 신분으로 카툰부머 회원들과 만나는 시간이 정말 즐겁더라고요. 자연스레 내가 있을 자리는 여기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촌스러운 열정’으로 시작한 거죠.”

다른 사람들의 원고료가 궁금해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던 새내기 만화가가 있었다. 그는 이후 한국 웹툰 1세대 작가가 됐고 지금도 새로운 재미를 주는 만화를 창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취미로 만화를 시작해 후학을 양성하기까지 그는 한국 웹툰계와 함께 성장했다. 변함없는 배움의 자세로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는 권혁주 동문(철학과 98학번)의 만화 세계에 들어가 봤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2020년 웹툰 <씬커> 완결 후 휴식기를 가지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작인 웹툰 <움비처럼>과는 다른 느낌이면서 오래 연재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 중이에요. 2019년부터 공주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웹툰창작, 만화미학 등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받은 자극을 창작 활동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지냈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라고.
  “<씬커> 연재 당시 책상에 그저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만화 작업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훨씬커’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씬커>를 연재하던 당시 일과 중 하나는 ‘씬커’를 검색하는 것이었는데요. 제 작품에 대한 평가보다 ‘훨씬 커’라는 말이 더 많이 나오는 거예요.(웃음) 또 제가 ‘생각보다 체격이 훨씬 크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그렇게 ‘난 당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의미를 담아 채널명을 지었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칠 목적으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댓글 등을 통해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알기 위한 목적이죠. 학생들에게 웹툰을 가르치기 위해선 다양한 웹툰 장르를 알고 있어야 해요. 순정과 액션 장르 등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두고 계속 배우려고 하죠. 더 많이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진학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영화감독을 꿈꿨는데요. 학부생 때는 영화 제작 기술을 배우기보다는 기초 교양을 쌓는 것이 좋겠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인문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타 인문계열 학문과 달리 철학은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무엇을 배울지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철학과에 입학한 뒤 알게 된 사실인데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진학한 학생들이 꽤 있더라고요.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매력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가게 하거나 답이 없어 보이는 일을 두렵지 않게 만들어 준 학문이에요. 철학을 통해 틀린 답은 없고 잘못된 질문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철학 하는 태도나 방법이 창작 활동에 여전히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중앙대에서의 추억이 있다면.
  “동양철학을 강의하시던 이명한 교수님과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1학년 때 하버드대 티셔츠를 입고 이명한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 교실에 하버드대생이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미운털이 박혔다고 생각했죠. 그 이후에 학과에서 답사에 간 적 있는데, 제가 답사 안내 도록을 만들었어요. 교수님께서 도록을 인상 깊게 보시곤 만든 학생을 찾으시면서 인연이 시작됐죠. 교수님을 찾아뵐 때마다 항상 차를 내려주셨던 기억이 나요. 교수님과 함께 라면도 끓여 먹고 담배도 피우며 6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죠. 이 교수님과 만나기 위해 중앙대에 왔다고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로 인연이 깊습니다.”

  -웹툰 작가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2000년대 초반은 특별한 자격 없이 누구나 그림을 그려 개인 홈페이지에 게시하면 그게 웹툰이 되는 시기였어요. 당시 대학원에 다니며 취미로 개인 홈페이지에 웹툰 <암연즈>를 연재했죠. 취미로 시작했지만 이 작품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더라고요. 다른 만화가들이 웹툰 연재로 원고료를 어떻게 벌고 있는지 궁금했죠. 2006년 웹툰 작가 커뮤니티 ‘카툰부머’를 개설해 정보를 얻기 시작한 것이 웹툰을 본업으로 삼게 된 시작점이었습니다. 만화가 신분으로 카툰부머 회원들과 만나는 시간이 정말 즐겁더라고요. 돈을 버는 일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내가 있을 자리는 여기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촌스러운 열정’으로 시작한 거죠.(웃음)”

  -카툰부머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나.
  “카툰부머에서 활동하며 다른 만화가들도 원고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웹툰포럼을 개최해 어떤 식으로 만화를 그리는지, 어떻게 계약을 따냈는지 만화가들 간에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웹툰 플랫폼 담당자도 초청해 발제와 질의응답을 진행하며 한국 웹툰계의 흐름을 익혔죠. 도전만화와 정식 만화만 있었던 네이버 웹툰에 ‘베스트도전’을 만드는 데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연재하게 된 작품이 웹툰 <그린스마일>입니다.”

  -가장 ‘나다운 작품’으로 <움비처럼>을 꼽았는데.
  “시와 만화를 접목한 작품인데요. 약 2년 동안 환경문제를 다룬 <그린스마일>을 연재하며 느꼈던 무력감과 피로감을 해소하고자 연재한 작품입니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슬로 라이프를 주장하는 환경운동에서 착안해 구상한 만화가 바로 <움비처럼>입니다. 느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라는 소재를 고안했죠. 짧은 글이지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슬로 라이프의 연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매주 시를 읽으며 스스로 변화를 체감하다 보니 좀 더 나다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수성의 정점을 찍은 시기인 것 같아요.”

  -<씬커>로 색다른 시도를 했다.
  “정적인 작품만 그리다 보니 액션 장르를 그리고 싶더라고요. 기계가 가진 고유의 전파만으로도 해킹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해킹 히어로를 구상했습니다. 발상 자체는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아 SF 어워드에서 수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액션 장르에선 히어로보다 악당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매력적인 악당을 만들어 내는 게 정말 힘들었죠.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매우 큽니다. 저를 겸손하게 만드는 작품이죠.”

  -재미있는 작품을 구상하는 방법은.
  “저는 저만의 공식으로 재미를 수치화하려 해요. 나름대로 정의한 재미의 개념을 통해 고해상도로 재미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단 1%의 새로운 경험조차 재미라고 정의하죠. 만화를 통해 독자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나 소재를 보여주는 것이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장르에서 독자가 느끼는 패턴화된 재미와 창작자가 무언가를 표현할 때 느끼는 재미는 다른데요. 그 간극을 줄여나가며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요.”

  -창작 활동에서 힘든 점이 있다면.
  “욕심을 내려놓고 주어진 시간에 맞추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거기까지가 내 실력이에요. 작품의 퀄리티는 자존심이고 마감 시간은 생명이라는 말이 있는 이유죠.
  작품에 대한 평가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는데요. 비난은 비난대로 힘들고 때론 응원도 부담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아무 의견 없이 그냥 ‘ㅋㅋㅋ’만 써주는 댓글을 좋아합니다.(웃음)”

  -한국 웹툰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웹툰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자가 웹툰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웹툰도 하나의 문화로 정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국가적 차원에서는 불법 웹툰 사이트 관련 규제책이 뒷받침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앙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노력하지 않으면 방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노력하는 시간이 곧 방황하는 시간인 거죠. 방황하고 있는 지금이 훗날 아름답게 기억될 거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될 거라고 믿고 좀 더 마음껏 방황해도 좋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 공간입니다. 중앙대에 다닐 당시에도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좋고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생각했죠. 가장 좋고 아름다웠던 시절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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