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하는 친구 곁에 있으면 괜히 나도 불안해진다. “이렇게 해서 되겠어, 지금부터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의문이 가득하지만, 가뜩이나 급한 마당에 굳이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벼락치기의 목표가 시민의 안전과 질서를 보장하기 위함이고, 그 주체가 한 국가의 정부라면 상황은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최근 뉴스를 보며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일종의 ‘벼락치기식 행정 운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부가 어떤 사안에 관해 총동원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전 국가적인 중대 사안이 발생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총동원령이 벼락치기와 유사한 이유는 이전부터 무책임하게 진행된 업무에 대한 방관이 현재의 행정적 비상사태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지난주 막을 내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살펴보면 정부의 안일한 대비가 여실히 드러난다. 폭염을 대비할 그늘이 마련돼 있지 않아 대회 개최 사흘 만에 약 2900명의 대원이 온열질환을 호소했고 결국 소방 당국은 비번 인력을 총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발표했다.

  이뿐인가. 강제 동원된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은 대원들의 버스 탑승을 관리했으며 국가보훈부 공무원은 통역과 안내를 담당했다. 총동원령이 빚어낸 기이한 풍경이다.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故 채수근 상병의 경우는 미숙하게 총동원령을 내릴 경우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큰 수해를 입은 지역에 구명조끼 없이 군인들을 내몰았던 지시는 수색의 결실을 얻기는커녕 해병대라는 이름의 강압적인 부조리를 수면 위로 드러낼 뿐이었다.

  요컨대 총동원령은 세 가지 측면에서 국민의 염려를 ‘총동원’한다. 첫째, 공무원·공공기관 직원의 대규모 차출이 이뤄져 행정적 공백이 발생한다. 둘째, 총동원령의 지시는 그간 진행해 온 행정 처리의 안일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에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형성된다. 마지막, 방만한 행정 처리로 현재의 비상사태를 만들어 낸 관료들이 총동원령이라는 거대한 도구를 미숙하게 사용하여 섬세하지 못한 결과를 내던진다.

  당장 급한 불을 진압하려면 총동원령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동원령을 둘러싼 행정적 맥락을 살펴볼 때 이를 진정한 해결책이라 부르기엔 참담하다. 애초 진행된 업무에서 유의미한 피드백과 책임감 있는 관료가 존재했다면 총동원령은 불필요했을 것이기에, 해결책이라기보단 벼락치기식 행정 회피라고밖에 부를 수 없다. 총동원령이 지시되기까지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총동원령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입은 자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래야 한다.

  국민 앞에서 총동원령을 쉬이 입에 올리는 자들에게 묻는다. “이런 식으로 해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기 전에 달라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박주형 대학보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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