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로섬 게임(Non-zero sum game)은 한쪽의 이익과 다른 쪽의 손실을 합했을 때 제로(0)가 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제로섬 게임(Zero-sum game)과 대비되는 단어죠. 현실엔 손해와 이익을 더해 0이 되기보단 (+)나 (-)가 되는 상황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등장했습니다. 이번 학기 여론부에 몸담으며 되짚었던 논제로섬 게임의 의미를 독자분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기사는 인터뷰이의 멘트와 정제된 문장으로 완성됩니다. 이때 인터뷰이의 멘트는 기사의 출발점, 정제된 문장은 기사의 도착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두 언어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 기사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두 언어가 적절한 일치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한 편의 기사가 완성됩니다. 인터뷰이가 내뱉은 문장의 의미와 기자가 쓴 정제된 문장의 결이 맞닿을 때 기사가 되죠.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언어의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때 논제로섬 게임이 시작됩니다. 인터뷰 당시 인터뷰이가 택한 단어와 더불어 표정, 몸짓을 정제된 문장 속에 녹여내는 작업이 필요하죠.

  논제로섬 게임을 위해선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면이나 전화의 형태가 아닌 인터뷰이와 눈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죠. 제빵을 위해 재료를 계량하듯, 기사에 녹여낼 두 언어를 일정한 비율에 따라 계량할 수는 없습니다. 그 비율은 누구도 알 수 없을뿐더러, 정확히 반으로 나눠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의 인생과 경험이라는 맥락을 고려해 멘트를 그대로 기사에 싣거나, 독자의 편의를 고려해 말끔하게 정제한 문장으로 풀어내기도 하며 합의점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합의점 찾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맥락을 꿰뚫었다고 자부하면서도 독자의 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렵게 찾아낸 합의점에서는 단순히 정보 전달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깨달음을 줄 수도,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울림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죠. 지난 두 학기 동안 기자는 두 언어의 합의점을 고민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를 쓰는 과정과 유사하게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직면할 수많은 선택지 중 적절한 합의점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건 합의점의 위치를 찾는 것보다는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련의 합의점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모인 합의점의 집합은 인생이라는 선을 만들어 내겠죠. 매 순간 진심을 담아 합의점을 모색한다면 분명 그 선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의 합의점을 도출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번 학기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정다연 여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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