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창가를 좋아하는 것 같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식당에 가면 항상 창가 자리는 이미 만석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공간 외에도, 무의식적으로 ‘관찰 본능’에 의해 주변을 더 살피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창문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관찰하곤 한다. 

  중대신문 제2041호를 보고, 지난 한 주간 학교의 가장 큰 이슈였던 축제를 다시금 떠올렸다. 다양한 부스와 먹거리들을 즐기기도 했지만, 여건상 대기가 어려워 본무대를 즐기지 못하기도 했다. 모든 프로그램을 즐기지 못한 나의 아쉬움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다른 학생들의 아쉬움 그리고 다소 삐그덕댔던 문제점들을 되짚는 기사가 인상 깊었다. 이는 지나간 일에 회상할 뿐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축제에서 발생한 안전 통제 문제와 새치기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담은 기사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물론 학우들과 부스를 즐기고, 모임의 장을 가질 수 있게 해준 많은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다. 그러나 평소 우리는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만으로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즐거웠던 시간 속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후 단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창문’을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 충분하다. 이해하고, 느끼고, 침묵하는 순간의 창문 하나.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창문이라는 시 중 한 구절이다. 중앙대생이라면 적어도 ‘하나의 창문’을 중대신문으로 둔다면 어떨까? 침묵하는 순간에 닫혀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둠으로써 각자의 시각을 키울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더욱 성숙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다은 학생
연극전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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