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시간을 거스르거나 앞지르는 방식으로 서사의 흐름을 만드는 타임슬립(Time Slip)물이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이 갑자기 외계인을 만나 새로운 능력을 갖추거나, 과거로 되돌아가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최근의 이런 유행은 뒷맛이 쓰다. 타임슬립과 같은 판타지의 유행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현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대학생 시절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20대는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시기이다. 나 또한 미성년의 굴레를 벗어나 처음 자유를 맛보았던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처음이던 시절, 그때 경험한 강렬한 감정과 경험은 추억이 되어 지금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줄 때가 많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그 시절의 자유를 즐기라는 조언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20대는 자유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컸던 때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외로움에 빠져 울기도 했었다. 남들 따라 바지런히 학점을 따느라 바빴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사이에 아르바이트하며 종종걸음을 놓았다. 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마음속에 몰래 감추고 있었지만, 정작 매일 살아 내는 것이 바빠 가끔 시집을 들춰 보거나 소설을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는 말조차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부끄러웠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내가 겪은 불안이 미성숙한 시절의 통과의례였다면, 요즘 대학생들의 불안은 생존에 닿아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또다시 상대평가 제도 아래에서 학점 높이기에 열성적이다. 이것도 모자라 취미, 봉사활동, 공모전, 인턴십 등 4년으로는 다 해낼 수 없는 스펙을 쌓느라 졸업을 유예하고 휴학하는 일도 일반적이다. 바디프로필과 같은 몸매 만들기까지도 더해졌으니 이들에 비하면 나는 20대를 거저 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SNS를 통해 유행하고 있는 ‘갓생 살기’는 젊은 세대들의 ‘현생’을 잘 보여준다. 나는 ‘갓생 살기’에서 계획성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부지런하고 건강한 20대가 아닌, 그들의 불안을 본다.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뭐든지 다 될 수 있는 완벽한 삶을 만들어 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아릿하다. 

  나의 20대 시절은 이제 꿈처럼 흐릿하지만 또렷이 기억나는 몇 장면들이 있다. 그것은 성과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나의 불안한 삶을 확실하게 밝혀 주었던 것은 그 시절 만났던 사람들이다. 때로는 친구였고, 후배였고, 선배였고, 선생님이던 사람들.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나는 기꺼이 타임슬립을 하겠다. 그리고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기형도, <엄마 생각>)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한강, <괜찮아>)라는 말을 건네며. 

강유진 교수
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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