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자 과반 ‘성평등 기구 필요하다’ 
약 20.24%는 성평등 기구 부재로 불편 느껴 
성평등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학생들의 주체적인 참여 병행돼야



대학사회에서 성평등 기구가 폐지되는 사회적 흐름은 뚜렷하다. 그러나 일각에선 대학사회의 성평등이 설익었음에도 불구하고 성평등 기구의 폐지가 추진됐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설문조사를 통해 학내 성평등 기구에 대한 학생사회의 생각을 들어봤다. 
 

 


   학내 구성원의 생각은 

  중대신문은 5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중앙대 재학생 및 휴학생 168명을 대상으로 ‘중앙대 성평등 기구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성평등 기구 필요성에 관해 물은 결과, 긍정적 답변(매우 필요하다·필요하다, 약 57.14%)은 부정적 답변(매우 필요하지 않다·필요하지 않다, 약 33.34%)보다 약 23.8%p 많았다. 긍정적 답변을 한 학생들은 답변 이유로 ‘학내 성폭력·성희롱의 공동체적 해결을 위해서’, ‘사회 진출 전 성평등 문화 경험을 위해서’ 등을 들었다. A학생(국어국문학과 4)은 “대학사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선 폭력을 가능케 했던 근본적 원인부터 앞으로 이루져야 할 노력까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관련 자치기구가 존재하면 학내 성폭력 사건에 공동체적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성평등 기구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학생들은 그 이유에 관해 ‘성불평등 문제를 체감하지 못한다’, ‘남녀 갈등을 심화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우려가 있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성평등 기구 부재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고 응답한 학생은 응답자의 약 20.24%였다. 구체적인 불편 사항으로는 ▲성차별적 발언의 신고 창구 부족 ▲학내 성범죄 대응 부족 ▲학생 자치기구의 성평등 논의 부족 등이 다수를 이뤘다. 김민형 학생(사회복지학부 4)은 “당장 느끼는 불편한 점이 없더라도 언제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는 영역”이라며 “문제 발생 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기구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불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평등과 관련해 학생인권위원회(학인위)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약 36.9%)가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2022 중앙대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 교내 성희롱·성폭력 경험과 관련해 성적 농담, 놀림, 외모평가(136건)가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원치 않은 성생활 이야기(82건) ▲불쾌한 시선(78건) ▲술 따르기 강요(72건) 등이 뒤를 이었다. 성차별로 인한 인권침해 경험 발생 빈도는 310건으로 나타났다. 신경아 교수(한림대 사회학과)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외모평가 등은 인권센터에 찾아가 크게 문제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인권센터에 찾아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자치기구만의 역할이 있다 

  중대신문 설문조사에서 학내 성평등을 다루는 데 있어 인권센터와 학인위만으로 충분하냐는 질문에 ‘충분하다(약 58.93%)’는 답변이 ‘충분하지 않다(약 41.07%)’는 답변보다 약 17.86%p 많았다. 다만 인권센터는 성희롱·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여러 조치를 하고 있으나 인권센터만으로는 일부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성평등위원회 폐지 이후 성평등 사안과 관련해 인권센터가 학내 유일한 선택지라는 점에서 한계를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피·가해자가 속한 공동체 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간 거리를 조정하고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지지하는 일은 학생자치기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며 “성평등과 관련된 학생자치기구의 역할이 활성화돼 협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의령 교수(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는 인권센터에 관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경우 이를 시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성평등을 위한 자치기관이 될 수 없다”며 “성평등 학생자치기구와 인권센터가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전했다. 

  성평등 학생자치기구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다. 중대신문 자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부 학생은 성평등 자치기구가 진행하는 사업이 특정 성별에 치우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성평등 기구의 여성 복지 사업이 여학생만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했다. 전의령 교수는 “성평등 기구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성불평등이 학내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기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특정 대상만을 위한 복지라고 여기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을 없는 것으로 비가시화하려는 경향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신경아 교수는 “자기 동료이자 친구인 여성이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를 겪는다면 남녀 구별 없이 모두에게 괴롭고 아픈 기억이 될 수 있다”며 “학내 안전을 증진함으로써 여학생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 모두의 캠퍼스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했다. 

  여러 학생들은 성평등 기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성평등 기구는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가치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화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학내 자치기구는 단순히 학내에서 사업을 벌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며 “성별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를 방관하거나 올바른 성평등 가치의 확산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실제로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에 대한 부가적인 가해이며,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문화를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평등’ 관련 사안을 마음 놓고 논의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A학생은 “소수자와 약자를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편하게 꺼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성평등한 대학사회를 만들기 위해 소수자와 약자들의 의제가 논의될 수 있는 학생자치기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김민형 학생은 “인권센터와 학인위에 성범죄 등의 사안을 선뜻 말하기는 힘들다”며 “꼭 해당 사안만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학내에 마련되는 것은 마땅하다”고 말했다. 



  올바른 성평등 인식 필요해 
  
  일부 대학사회 구성원은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해 페미니즘과 여성우월주의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아 교수는 페미니즘에 대해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대우하자는 것”이라며 “평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환경적인 조건을 갖추어 달라는 기본적인 요구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A학생은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는 이야기하는 것이지 특정 성별에 대한 우월주의가 아니다”라며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폭력은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이런 폭력과 차별을 없애자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연하게 퍼져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꼬집으며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현아 포항공대 총여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화학공학과)은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같은 익명 공간에서 성평등 기구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며 “성평등에 관심이 있더라도 온라인상에서 공격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김민형 학생은 “성평등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온라인상에서 성평등에 대한 왜곡이 지나친 탓에 이러한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낙인찍힐 것 같다는 불안감이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범죄 문제 등에 관한 편안한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심청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운영위원(디자인조형학부)은 “커뮤니티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는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큰 용기”라며 “단순히 인터넷상으로 접한 와전된 페미니즘이 아닌, 진짜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인식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성평등 문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관련 교육이 시급하며 나아가 학생의 주체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경아 교수는 “스토킹·성적 대상화·여성 혐오 발언 등으로 캠퍼스에서조차 여학생이 안전하지 못하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온라인상에서의 왜곡된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성평등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전했다. 전의령 교수는 “성과 관련된 강의 등 교육의 확대를 통해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현재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강의를 넘어 학생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성평등 관련 논의를 활발히 이어갈 수 있는 자치기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는 “학생 대표자라면 무분별한 혐오에 반대하고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내 자치 단위의 어떤 사업이든 다수에 반하는 목소리라 하여 묵살하거나 없는 것처럼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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