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서울캠 총여학생회(총여)는 2014년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습니다. 안성캠(현 다빈치캠) 총여도 2018년 폐지됐죠. 총여 폐지는 중앙대만의 일이 아닙니다. 서울 소재 여러 대학에서 총여 폐지 흐름은 명확한데요. 대학사회에서 총여가 사라지는 이유는 뭘까요. 총여도, 이를 대체할 성평등위원회도 사라진 중앙대 성평등의 미래는 이대로 괜찮을까요. 대학사회 내 성평등 기구의 현주소와 그 필요성을 중대신문이 알아봤습니다. 권오복 기자 luckyfive@cauon.net
 

 


지난 2022년 제주대 총여학생회(총여)가 끝을 고했다. 국내 대학의 성평등 학생자치기구 폐지 흐름이 계속되는 가운데 중앙대도 2021년 성평등위원회(성평위)를 폐지하며 이에 편승했다. 성평등 담론이 사라진 대학사회는 안녕할까.

  역행하는 성평등 담론 
  대학 내 여성의 권리 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총여는 1984년 서울대와 고려대를 시작으로 대학사회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1985년 6월 5일, 중앙대에도 제1대 총여가 출범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여성운동이 확산하며 ‘학내성폭력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한 여성연대회의’(여성연대회의)가 조직되기도 했다. 2000년, 중앙대 제2캠 총여는 반성폭력 학칙을 제정했고 여성연대회의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서울캠 총여는 2009년 이후 후보자가 출마하지 않으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하는 등 존속 위기에 봉착했다. 2011년을 제외하곤 총여가 구성되지 못했고 결국 2014년 4월 9일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서울캠 총여 특별자치기구화’ 논의 안건이 통과되며 총여가 폐지됐다. 이후 2014년 9월 3일 34차 정기 중앙운영위원회를 통해 총여의 대체 기구인 성평위가 발족했다. 그러나 성평위의 수명도 그리 길지 않았다. 성평위 발족 7년 만인 2021년, 학생들의 연서명을 통해 성평위 폐지 요구안이 확대운영위원회(확운위)에 상정됐고 안건이 가결돼 성평위는 폐지됐다. 한편,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듯했던 안성캠 총여도 2018년 그 끝을 맞았다.  

  총여 폐지는 중앙대만의 일이 아니었다. 2010년 한국외대 서울캠 ‘여학생위원회’는 총학생회(총학)로 흡수됐고 2013년 건국대는 전학대회에서 총여 폐지를 결정했다. 2018년에는 성균관대, 2019년에는 연세대에서 학생 총투표를 통해 총여가 폐지됐다.

  졸속 폐지된 성평등 기구, 그 이유는 
  중앙대 내 성평등 기구 폐지는 성급히 진행됐다. 안성캠 총여 폐지 과정 중 ‘총여학생회 체제 개편에 대한 간담회’는 미흡한 사전 공지로 18명밖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튿날 전학대회에서 강기림 총여학생회장에 의해 폐지안이 발의됐다. 서울캠 성평위 또한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내에 성평위 폐지를 위한 연서명이 게시돼 약 400명의 학생이 참여했고 연서명 게시 8일 만에 확운위에서 성평위 폐지가 결정됐다. 확운위에서는 찬반 토론이 진행되지 않았고 표결 방식에 이의가 제기됐지만 다수 학생 대표자가 폐지에 동의하면서 안건이 즉시 가결됐다. 

  타대에서도 졸속으로 총여 폐지가 결정된 경우가 여럿 있었다. 2018년 동국대 총여는 당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학생 총투표가 진행돼 폐지됐고 2019년 연세대 또한 같은 방식으로 겨울 방학 중 총여가 폐지됐다. 제주대에서는 학칙상 여학생총회를 통해 총여의 존폐를 결정할 수 있었으나 학생 총투표를 통해 일방적으로 총여 폐지가 결정됐다. 이에 학생들은 ‘제주대 총여학생회 폐지를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제주대 공동대책위원회)를 형성하기도 했다. 

  대학사회 전반에서 잇따르고 있는 성평등 기구 폐지의 원인은 무엇일까. 타대 학생자치기구소속 학생들은 성평등이라는 개념에 반감을 느낀 이들의 반발인 백래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심청 고려대 여학생위원회 운영위원(디자인조형학부)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백래시 물결이 거세졌다”며 “총여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학생사회 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 결과로 현재 대부분의 총여가 사라졌고 일부 대학에서 인권위원회·성평등위원회·소수자인권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변경돼 겨우 운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하영 한예종 인간다울 권리를 위한 학생자치기구 위원장(한국예술학과)도 “성평등 기구의 해산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더불어 성평등 관련 백래시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2017년 이후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흐름은 대학사회 내 성평등이 정착하는 데 큰 성과를 냈다”면서도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서 젠더 갈등과 관련한 대립이 더욱 첨예해졌다”고 밝혔다. 

  이에 관해 신경아 교수(한림대 사회학과)는 “에브리타임 안에서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혐오 발언이 자주 오간다”며 “대다수가 이용하는 온라인상에서 차별적인 발언이 가지는 영향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성평등을 부정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과잉 대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보근 성공회대 인권위원회 위원장(사회융합자율학부)도 “코로나19 이후 에브리타임 등의 익명 커뮤니티가 학생사회 내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며 “인권 감수성이 낮은 에브리타임 내 구성원들로 인해 대학사회 내 백래시가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성평등 기구의 부재, 그 이상의 결여 
  성평등 기구 폐지로 기존 시행하던 성평등 사업이 축소되기도 했다. 심청 운영위원은 “혐오 발언을 제지하던 총여가 폐지된 이후 총학이 해당 커뮤니티 내 성평등 관련 혐오 발언을 반영해 기존 예정되어 있던 인권연대국의 퀴어퍼레이드 참가를 취소하기도 했다”며 성평등 기구의 부재로 인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A학생(국어국문학과 4)은 “성평등 기구를 대체하려면 최소한 기존에 진행되던 성평등 관련 사업이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하지만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이는 성평등 자치 기구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도 성평등 기구가 부재가 성평등의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총여·성평위 폐지에 따른 성평등 사업의 소멸보다 더 큰 문제는 성평등 담론 자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저하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신현정 제주대 공동대책위원회 간사(정치외교학과)는 “제주대에 입학했을 당시인 2017년에는 학내에서 페미니즘 관련 학회를 진행하고 다양한 학생 운동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오며 학생사회 내 담론이 인터넷 매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며 “그 결과 익명성에 기댄 비방이 많아졌고 생산적인 논의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심청 운영위원은 “성평등 관련 기구의 필요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학생사회 내 성평등 인식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학내에서 성평등을 논의하기에는 공론장이 부족하고 여성혐오로 얼룩진 에브리타임으로 인해 논의의 진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관해 오하영 위원장은 “총여·성평위와 같은 학생자치기구의 존재는 학생들이 학생사회의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며 성평등 기구가 마련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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