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젠더이슈를 두고 가장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세대다. 설문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하면 2018년 기준 20대 청년에게 젠더란 이념, 계층, 빈부보다 더 주요한 갈등 요소다. 청년들은 오프라인상에서보다 온라인상에서 젠더갈등이 더 극심하게 표출된다고 말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또한 젠더갈등을 건전하게 논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설문조사를 통해 젠더갈등에 관한 청년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어디에든 젠더갈등은 존재한다 

  사회부가 지난 5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10대에서 30대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22명의 응답자 중 약 79.51%(97명)가 한국 사회에서 젠더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혹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다섯 명 중 네 명의 청년은 젠더갈등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판단하는 원인은 주로 온라인과 관련됐다. 젠더갈등의 심각성을 느낀 사례를 묻는 질문에 청년들은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이 많이 발견된다’, ‘뉴스 등 미디어에서 젠더갈등에 대한 언급이 잦다’, ‘어떤 문제가 제기되든 온라인 상에서는 성별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등으로 답변했다. 특히 커뮤니티와 유튜브 댓글, 웹소설과 만화 댓글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혐오 표현이 많이 언급됐다. 

  응답자들은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실생활에서 직접 젠더갈등을 경험한 경우는 적다고 얘기했다. 권오빈 학생(18세)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젠더갈등을 많이 체감하지만 일상에서는 젠더갈등의 심각성이나 이로 인한 피로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전했다. 설문에서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익명성이라는 방패를 이용한 과격한 의견표출이 많이 나타난다’, ‘실생활에서 젠더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 경우는 적다고 느끼는 것에 비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젠더갈등을 유발하는 댓글이나 싸움으로 번진 댓글이 자주 보인다’는 답변이 있었다. 

  다만 실생활에서도 젠더갈등은 다양하게 존재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만큼 극단적으로 표출되지는 않지만 젠더문제를 체감한다는 것이다. 설문조사 결과 젠더갈등이 실생활 속에서 표출되고 있다고 응답한 청년은 약 65.57%(80명)이었다. 남성의 경우 군대와 관련한 사안에서 자신의 노력이 폄하되는 분위기와 젠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분위기를 느낄 때 젠더갈등을 체감했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성희롱과 혐오 발언, 그리고 ‘사상검증’이라고 불리는 행위(젠더 관련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를 경험할 때 젠더갈등을 느꼈다고 밝혔다.  

  애써 바닥만 쳐다보는 대화 

  다수가 온·오프라인 상에서 젠더갈등을 경험하고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청년은 실생활에서 젠더갈등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회피한다. 설문에 응답한 청년의 약 94.26%(115명)가 ‘사람들이 젠더갈등에 관해 직접 이야기하기 꺼린다’고 답변했다(매우 그렇다 약 34.43%, 그렇다 약 59.84%). 그 원인으로는 극단주의자로 낙인찍힐 것에 대한 두려움, 젠더갈등 상황에 대한 피로감 등이 꼽혔다. 

  응답자들은 낙인에 관한 두려움이 실생활에서 젠더갈등에 대한 논의를 막는다고 언급했다. A학생(서울대 자유전공학부)은 “젠더갈등에 대해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으로 비춰지거나 의견을 표했을 때 의도가 왜곡되기 쉽다고 생각해 실생활에서 젠더갈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문 답변에서는 ‘젠더문제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일부 극단적 커뮤니티 이용자처럼 보일 수 있다’, ‘실생활에서 언급했을 때 차별주의자 혹은 극단주의자로 몰리게 될 것 같다’ 등의 답변이 있었다. 

  전문가들도 젠더갈등이 온라인에 비해 실생활에서 표출되지 않는 이유로 사회적 시선을 꼽았다. 홍찬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일부 남성들은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굳이 시간을 써가며 주장하는데 거부감이 있다”며 “광장에서 공론화 작업을 하는 것에 사회적 시선을 매우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극단적 주장에 관해 잘못됐다며 비판하지 않는 이유는 소속된 집단 내부에서 받을 시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젠더학을 전공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한 김현정 석사(워싱턴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박사과정)는 “이러한 현상은 정치 얘기를 꺼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며 “타인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감한 문제를 꺼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나와 다른 성별이라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젠더갈등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대화보다는 다툼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젠더갈등에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있다. 설문 결과 청년의 약 79.51%(97명)는 젠더갈등에 관해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청년은 그 이유에 관해 ‘(입장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나 싶어 피로감을 느끼며, 굳이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거나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젠더갈등 이외에도 나눌 이야기가 많은데 굳이 논쟁적인 대화에 에너지 소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인간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두려움’도 크게 작용한다. ‘예민하고 민감한 주제임을 알고 있음에도 대화 주제로 선정할 필요가 없다’, ‘공격이나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꺼려진다’, ‘싸우게 될까 두렵다’ 등의 의견도 있었다. 마치 ‘방 안의 코끼리’처럼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애써 입에 올리지 않는 상황이다. 

  건강한 젠더갈등은 가능한가 

  오재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자연현상에 선과 악이 없는 것처럼 갈등도 선과 악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러나 현재의 젠더갈등은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서로에 대한 혐오 발언과 이로 인한 영원한 단절이 이어지는 양상이 나타나 문제”라고 설명했다. 

  전문가와 청년은 젠더갈등이 건강하게 해결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혐오 표현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젠더혐오와 혐오 표현을 연구한 연지영 석사(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는 “혐오를 혐오로 맞받아치는 방식은 갈등의 양상을 혐오에만 머무르게 하며 실제 해결해야 할 성차별 문제는 논의하지 못하게 한다”고 밝혔다. 권민석 학생(국제물류학과 4)은 “극단적인 집단의 강 대 강 구도에서 발생하는 혐오는 사회 발전이 아닌 균열만 가져올 뿐이므로 소모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건강하게 젠더갈등을 다루는 방법은 회피가 아닌 활발한 토론이다. 공론장을 통한 성숙한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문가와 청년은 성숙한 토론이 이뤄지기 위해 첫째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조했다. 특히 연지영 석사는 “젠더갈등 해결을 법과 정부의 역할로만 논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기초 과목으로 편입시켜 개인 스스로 문제를 성찰할 수 있게 해 온라인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권오빈 학생은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갈등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학교 등의 기관에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며 “청년이 극단적 의견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둘째로 오프라인 공론장이 필요하다. 오재호 연구위원은 “갈등 과정에서 갈등 당사자 간 교감이 충분히 일어나야 하지만 온라인 환경에서는 어렵다”며 “접점을 만들어 서로 단절되지 않고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지영 석사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온라인 공론장은 이미 한계가 있음이 결과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오프라인 공론장이 더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젠더갈등의 논의를 오프라인으로 끌고 나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청년에 대한 이해가 필요 

  오재호 연구위원의 「젠더 갈등을 넘어 성평등한 사회로」 논문에 따르면 청년 세대에서 발생하는 젠더갈등을 잘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 세대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청년 세대의 특징은 젠더갈등을 세대 간 불공정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시킨다는 것이다. 1990년대생은 법·제도적 성차별이 해소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태어난 세대다. 청년 남성은 스스로를 법·제도적인 혜택을 받는 수혜자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 이뤄지는 성평등 정책에 관해 과거 세대가 누린 혜택의 책임을 당사자가 아닌 현 청년 남성에게 지우는 불공정한 처우라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청년 남성은 자신을 기성세대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청년 남녀 간 성차별에 대한 인식 격차가 크다는 두 번째 특징으로 이어진다.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여성과 기성세대에서 공유되는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는 명제가 청년 세대에서는 합의되지 않는다. 2018년 기준 20대 남성의 약 23%, 30대 남성의 약 40%만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여성의 경우 20대는 약 75%, 30대는 약 82%가 동의했다. 20대 남성들은 오히려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20대 남성 약 68.7%가 “남성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청년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가 차별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청년 여성은 취업 후의 차별적 구조와 여성안전 문제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고, 청년 남성은 역차별 이슈에 민감하며 의견을 표출하지 못해 박탈감이 커지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청년 남녀 모두 동의하는 지점도 존재한다. 고용·노동 정책에서 여성차별 문제와 병사 처우개선 문제에 청년세대 남녀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각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젠더갈등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젠더갈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멀어지고 있다. 회피는 답이 될 수 없다. 어렵고 힘든 길이더라도 공통의 접점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고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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